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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 리 고 개

송화강 2014. 2. 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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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리 고 개

 

 

디딜방아 공이 닳았다고

정미소로 갈까?

보리 서되 빻자고.

얼러리 덩더꿍   얼러리 덩더꿍

한번 더 밟으면 되지

한번 만 더 밟으면 되지.

 

보리죽으로 키운 오남매

그 고개 넘을 적에

설익어도 따다 삶는다네.

삶아 말린다네.

양다리 디딜방아에 새끼줄 매고

얼러리 덩더꿍  얼러리 덩더꿍

 

 

먹은기 있어야 기운을 쓰제

줄아 니 덕좀 보자 날 좀 당기거라.

보리고개 못 넘기고 눈을 감은

뒷집 아뱀네 오월아 유월아

햇보리 나왓니라 보리죽 나왔니라.

얼러리 덩더꿍  얼러리 덩더꿍

 

 

시애미는 확에 쓸어 넣고

동서에 올케까지 이녁들 힘 좀 쓰소

보리죽 한 사발 먹어나 보세.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조작

양다리 디딜방아에 새끼줄 매고

얼러리 덩더꿍  얼러리 덩더꿍

 

 

1950년에 일어난 전쟁이 1953년 7월에야 끝이 났지만 이 땅은 폐허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양식은 떨어젔는데 아직 보리는 익지도 않았습니다.

소나무 새순 껍질을 벗긴 송기도 삶아먹고 쑥을 뜯어다 아껴둔 쌀가루, 감자가루, 밀기울에 묻혀 쩌서 먹기도 하고

더러는 들에서 개구리도 잡아 먹지마는 허기진 배는 달랠 길이 없습니다. 기어코 어린것 약한 것이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못먹어 꼬챙이가 된 아이들에게 홍역이란 둥 역병 따위가 덮칩니다.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조작비 라는 문구는 액막이를 위해 방아에 써넣는 경구입니다.

 

5월도 중순을 넘겨야 보리 알이 생깁니다. 급한 마음에 아직 설익은 보리를 꺾어다 삶아서는 멍석에 말려서

돌확에 넣고 찧습니다 식구 많은 집은 방아에 넣고 찧기도 하지요. 먹은 게 없으니 방아 밟는 다리가 천근은 되지요.

시 에미가 확 쪽에 앉아 쓸어 넣으면서 건너편에 기운 없이 매달아 놓은 새끼줄에 의지하는 며느리와 딸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 봅니다. 우선 입에 거칠지만 보리죽이라도 한 그릇 씩 하면 세상에 더 없는 행복이 오는

것이지요. 이 글은  시라기 보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둔 서술입니다.

 

여기 우리 회원 님들 중에서도 연세가 위쪽이신 분은 이 모두가 직접 겪으신 일이시지요.

덮혔던 눈을 이불 삼던  겨울 보리가  눈이 녹기 무섭게  파란 제 색을 찾아가는 것을 보다가  보리고개가 떠 올라서

몇줄 써 봤습니다. 또 이 땅의 반쪽엔 아직도 보릿고개의 망령이 남아 기승이니 아직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요.

 

디딜방아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밟는 쪽이 Y 자 모양인 양다리 방아는 우리나라만 있다고 합니다.

기운 없을 때 서로 마주보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면서 방아 밟기를 하던 우리 선조들의 친화적 성정이 낳은

독창성인 듯해서 더 친근감이 갑니다. Y자로 생긴 방아의 형상과 공이가 성적 상징으로 문학의 소품이 자주 되는 것

 역시 참 재미있습니다.

 

전남의 운곡 대보름 액막이굿과 전북의 부남  방앗거리 놀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저는 아직입니다.

 

이 참에 예쁘고 말 잘 듣는 방아귀신이나  하나 키워 볼까 싶습니다. ㅎ ㅎ .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쉬는땅 원글보기
메모 :

기아시대를 기록한 잊혀져가는 슬픈 시대상황을 그린 쉬는 땅님의 귀한 시문이라서 옯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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