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刘/江陵刘氏

본관시조(本貫始祖)|

송화강 2012. 10. 30. 23:23

강릉유씨(江陵劉氏) 본관시조(本貫始祖) : 劉承備(유승비)

강릉유씨 시조의 휘는 承備(승비)이시고 초휘는 瑞(서)이시며 자는 天祥(천상)이시고 호는 菊齋(국재)이시다.


강릉유씨 본관시조께서는 중국 송(宋)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이시며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이신 휘 (전) 할아버지의 9세손이시고, 문희공(文僖公) 휘 敞(창) 할아버지의 증조부(曾祖父)가 되신다.


공은 고려 원종(元宗) 14년 1273년에 강원도 우계현(羽溪縣)에서 송재공(松齋公) 휘 연(沿) 할아버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공은 고려조(高麗朝)에서 여러번 관직을 역임하시다가 상서도성좌복야(尙書都省左僕射)에 오르셨으며 춘추 고령에 이르시어 벼슬에서 물러나시자 고려 충혜왕(高麗 忠惠王)께서는 공에게 조봉하(朝奉賀)의 칭호를 내리시고 종신토록 나라에서 행하는 의식에 조복(朝服)을 입고 참여하라는 은전(恩典)이 베풀어졌으며 충정왕(忠定王) 3년 1350년 2월 2일에 서거(逝去)하시니 수(壽) 78세이셨다.


묘소는 개성부 남문(開城府 南門)밖 자좌원(子坐原)에 모시었고 시조(始祖) 할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옥구장씨(沃溝張氏)로서 개성부윤(開城府尹)이신 維(유)의 따님이시다.


공은 일찍이 안향(安珦) 일명 안유(安裕), 호 회헌(晦軒), 시호 문성(文成)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으셨다.


안유(安裕) 선생은 원(元)나라에 가서 주자전서(朱子傳書)을 손수 베껴쓰시고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귀국하여 고려말기의 유학진흥(儒學振興)에 큰 공적을 남긴 분이시다.


시조(始祖)께서는 동학인(同學人) 이제현(李齊賢)과 더불어 고려 충렬왕 34년 1408년에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건너가서 원나라의 거유명사(巨儒名師)로 유명했던 요수(姚燧), 염복(閻復), 조맹부(), 우집(虞集)등과 교우(交友)하여 그 학문이 더욱 심오(深奧)해졌으며 원(元)의 서책(書冊)과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상고(詳考)하여 연구 끝에 효행명(孝行銘)을 펴 내셨다.


시조께서는 조선왕조(朝鮮王朝)에 이르러 증손(曾孫) 敞(창)이 귀(貴)히 되시므로 인하여 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 통정대부호조참의(通政大夫戶曹參議)에 추증(追贈)되시고, 공의 고조부(高祖父) 휘 贊(찬)께서는 사온령사헌부(司令司憲府) 대사헌(大司憲)에 증직(贈職)되셨다. (시조 할아버지의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정이품의 품계인데 증직을 정삼품의 벼슬인 통정대부를 증직함은 부합(符合)하지 않으므로 지난 94년 대동보 간행시 편위의 결의에서 증통정대부호조참의 증직함을 쓰지 않기로 한바 있다.)


공의 증조부(曾祖父)는 휘 昇(승)이신데 고려판전리사사(高麗判典理司事)를 지내시고, 공의 조부(祖父)께서는 휘 海(해)이신데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역임하셨다.


공의 아버지께서는 휘 沿(연)이신데 호는 松齋(송재)이시다. 고려조 때 가정대부홍문관집현전(嘉靖大夫弘文館集賢殿) 대제학(大提學)을 지내시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령(領議政令)을 증직(贈職) 받으셨으며,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과 더불어 원나라에 건너가시어 모성급(模聖及) 72자상(子像)을 봉안(奉安)하여 현강릉(現江陵)에다 모시었다.


공의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서 호부시랑(戶部侍郞)승안(承顔)의 따님이시다.
공은 슬하(膝下)에 4형제를 두셨으니 장남에 松栢(송백), 차남에 송단(松檀), 삼남에 松節(송절), 사남에 송자(松梓)이시다.


장남이신 松栢(송백)은 고려때 봉익대부개성윤(奉翊大夫開城尹) 상호군(上護軍)을 지내시고 조선왕조에서 증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贈純忠積德秉義補助功臣)에 증직되시고, 松栢(송백)의 아드님 天鳳(천봉)은 고려조때 지안악군사(知安岳郡事)를 지내시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을 증직받으셨다.


공의 묘소가 기록에는 남아있으나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어 항시 오매불망 해오다가 후손들이 뜻을 모아 시조께서 옛날에 살으셨던 강원도(江原道) 명주군(溟州郡) 옥계면(玉溪面) 현내리(縣內里)에 1988년에 공의 유적비(遺蹟碑)를 정성들여 세웠다.


명주(溟州)는 강릉(江陵)의 고호(古號)이며 옥계(玉溪)는 곧 옛날 우계현(羽溪縣)이다.
따라서 이곳은 공의 증손인 문희공(文僖公)이 훈봉(勳封)된 곳으로서 강릉유씨(江陵劉氏)의 득관지(得貫地)이기도 하다.


이곳에 세운 공의 유적비에 "시조(始祖) 할아버지의 유적비를 세우고 보니, 앞 뒷산에 푸른 소나무 우거지고 석벽에 흰 구름만 자욱하니, 칠백년의 긴세월이 흘렀건만 유풍(遺風)은 가시지않아 부노(父老)들의 예모(禮貌)는 고금(古今)과 같네, 후손들이 번창(繁昌)하니 복록(福祿)이 더욱 오래가리, 근원(根源)이 깊어서 그 흘러감이 더욱 빛나는 것은 공(公)을 알려고 할진데..." 라고 새겨진 비문(碑文)을 우리는 다같이 음미하고 또 새겨서 이를 영원히 간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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