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刘/郡守公派

相护军公 刘安礼与国思峰

송화강 2016. 6. 10. 19:42

上护军公 刘安礼与国思峰

제천천 끼고 드는 첩첩오지의 산 국사봉(유경상 정리)

http://cafe.daum.net/guide24/ItVh/184?q=%C0%AF%BE%C8%B7%CA%20%B1%B9%BB%E7%BA%C0

 

上护军이란 벼슬은

조선 시대, 오위() 정삼품 벼슬.

 현직 없는 문관, 무관 음관/蔭官 벼슬아치들 임명하였다.


금성면 활산리에 있는 국사봉에는 단종에 얽힌 사연이 전해 온다. 조선 세조 때 단종의 신하였던 ‘유안례'는 단종이 영월로 귀향 오게 되자 활산리 살미에 ‘능골'(당시 안살미)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와 은행나무를 심고 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만 되면 나라를 위해 ‘국궁사배'를 올렸다고 한다. 그가 절을 올리던 방향으로 한 봉우리가 있었는데 이것이 후에 국사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국사봉은 나라를 위하는 봉우리라고도 한다. 국사봉 옆에는 오봉산이 자리하는데 그 중 국사봉이 으뜸이 되는 산이다. 오봉산에는 오봉장수가 날 명당터가 있다고 전해 오고 있다.

활산리는 원래 ‘거산리'로 불렸는데 ‘활산'으로 바뀐 이유를 마을 촌로들은 ‘거(去)' 자가 마을이 불길해진다 하여 살 ‘활(活)' 자를 써서 활산리로 바꾸게 되었다고 전한다.

치악산에서 뻗어 나온 능선이 제천 시내 갑산(776.7m)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며 호명산(475.3m)과 성산(426.1)을 만들고 이어 국사봉(632.3m)을 들어 올린 다음 마미산을 지나 (780m) 부산에서 그 맥을 청풍호 속으로 가라앉힌다. 또 마미산은 북서쪽으로 대덕산을 들어 올린 다음 여맥을 다한다.

 

 

국사봉에 접근하려면 봉양을 거쳐 제천천을 끼고 들어와야 한다. 예전에는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오지인 까닭에 접근이 힘들어 동학군들이 숨어들어 활동을 벌였을 정도이다.

 http://www.shinjongwoo.co.kr/name/ah/azb/rkdfmd/rkd81.htm

 

제천시 청풍면금성면의 경계가 되는 국사봉의 동쪽에 자리한 곳이 활산리이다. 활산리는 살미 또는 거산(居山), 활산, 시산(矢山)이라고도 하였다. 활산이라는 지명의 근원형이 되는 우리말은 ‘살미’로 빠르다는 의미의 ‘살’과 산을 의미하는 ‘미’[뫼의 변형]가 결합한 것이다. 마을의 뒤쪽에 위치한 국사봉의 형상이 빠른 물살이 흘러내리듯 가파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활’이라는 뜻에 주목하여 유래를 파악하기도 한다. 즉 산의 형태가 ‘활’의 형상, 또는 가파른 골짜기가 화살이 내리꽂힌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활산[시산]으로 불리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고려 때 이곳에 전산소(箭山所)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1898년 『충청북도각군읍지(忠淸北道各郡邑誌)』에 활산리라 표기되기 전에는 거산리(居山里)라고 표기된 사실이 확인된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거산, 『호서읍지(湖西邑誌)』에 거산과 활산이 병기되어 있다. 거산(居山)은 ‘살미’의 한역 지명으로 판단되는데, 이것이 활산이라는 표기로 바뀐 데 대해 마을 촌로들은 ‘거(居)’ 자가 ‘거(去)’ 와 음이 통하기 때문에 마을이 불길해진다고 해서 ‘살릴 활(活)’ 자를 써서 활산리로 바꾸게 된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활산리'로 표기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조왕곡, 자장리, 안간리를 병합하여 활산리라 해서 제천군 금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제천군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활산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안간이와 청풍면 장성리, 봉양읍 구곡리 등 3개 읍면 경계에 국사봉[632.3m]이 솟아 있는데 국사봉은 나라를 위하는 봉우리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활산리의 자재기마을[일명 지자기, 자자기, 자장리, 자작리]과 안간이마을의 중간에 오봉산이 솟아 있는데 오봉산에는 오봉 장수가 탄생할 명당 터가 있다고 하며, 자재기 뒤에는 자지봉(紫芝峰)이 솟아 있다.

또한 활산리에는 시산이 솟아 있고 자재기 서쪽에는 불근더기[산]가 소재하고 있다. 또한 살미 동쪽에서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 석동거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땅고개[일명 당고개]가 있고 활산리의 자재기에서 안간이로 넘어가는 곳에는 돌고개가 있으며 안간이에서 마곡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응골고개가 있고 생긴양지에서 황두리 황꼴로 넘어가는 곳에는 황골고개가 있다.

한편 활산리의 동쪽 땅고개에서 발원하는 계곡 물은 서쪽으로 흘러 중앙골을 지나 북쪽으로 흐르다 안간이 마을 부근에서는 좁은 산간 분지를 이룬다. 기소골의 기소골천은 서남쪽으로 흘러 장선천으로 합류하고 청풍호로 유입되고 있다.

[현황]

활산리금성면 서쪽 하단에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약 6.71㎢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0.83㎢, 밭이 0.17㎢이며, 총 48가구에 122명[남 63명, 여 5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농가에서는 소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활산리의 동쪽은 제천시 금성면 적덕리, 동남쪽은 월굴리, 서쪽은 청풍면 장선리, 남쪽은 후산리황석리, 북쪽은 금성면 사곡리, 북서쪽은 봉양읍 구곡리 등과 이웃하며, 자연 마을로 안살미, 자재기, 안간이, 중앙골, 지소거리 등이 있다. 안간이와 자재기에서는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도 있고 안살미에서는 담배, 오이를 주요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19가구의 오이 재배 농가는 금성면 오이 작목반에 가입되어 담배 농사를 끝낸 다음 오이를 파종하여 재배하고 있다. 또한 활산리에는 1966년에 개광하여 고토 비료를 생산하는 성지산업과 1999년에 개광한 영광이개산업 등이 자리하고 있다.

활산리 안살미에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노목이 있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 단종 때 충신 유안례(劉安禮)가 심었다고 전하며 은행나무 아래에는 제단과 해그림자로 시간을 재는 시계 그림이 새겨진 돌 등이 묻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자기는 살미 북쪽의 마을로서 자장사(慈藏寺)가 있었다고 하며 현재는 강릉 유씨 재실인 자장재(慈藏齎)가 있는데 자장재는 강릉 유씨 중시조 유안례 이하 누대를 모시는 재실로서 음력 10월 초에 시제를 올리고 있다.

한편 북부 지역에는 군도 21호선[구룡~연박]이 거의 동서로 달리고 있고 서부 지역에는 군도 18호선[산척~월악]이 달리고 있다. 중앙부의 생긴양지마을 부근에서는 동서로 관통하는 리도 201호선과 거의 남북으로 관통하는 면도 101호선 등이 교차하고 있는데 리도 201호선은 서쪽에서 군도 18호선, 면도 101호선은 북쪽에서 군도 21호선 등과 연결되고 있다.

활산리에서는 1960년대까지 20㎞를 걸어서 제천장을 보러 다녔다. 마을에서 제천으로 나가려면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한티재를 넘는 길로 가야 했다. 청풍장까지는 8㎞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청풍 쪽으로 가는 안살미 사람들은 땅고개를 넘어서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를 거쳐 갔다. 당시 청풍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였다. 활산리 사람들 중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단양의 구인사와 성내리 무암사 등을 주로 다녔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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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유씨 도시조님 동도년대 고증문

http://blog.daum.net/rosy900/5665657

 

 


『제천마을지』-금성·청풍·수산·덕산·한수면편(제천문화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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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장선리 주민 안병도, 남, 79세, 2011.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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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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