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시절 "스탠다드 영한사전"-지금은 안나오는듯-에서
she를 항상 "그미"라고 해석해놓길래
지레.. 일본 영한사전 베끼면서 그네들의 언어습관인가보다 싶었다..
즉, 그미(美)라고 쓰는 겐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최현배의 주장이 반영된 거였다고..(아래 펌글 참조)
초기의 영중사전엔 he를 他, 皮, 伊등으로 번역하고 she는 마땅한 번역어는 없다고 풀이하고 그저 여성을 칭하는 他, 皮, 伊로만 번역했고..
초기 화일사전(19세기 말)에서야 皮, 皮女로 번역한 사례가 있다고 하니... she의 번역은 일본 특유의 조어라 할수 있는듯..(From 번역어 성립사정)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후에서나 "그녀"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었다고 하니 그만큼 익숙하기 힘든 언어 습관이긴하다.. 현재도 "그"나 "그녀"가 구어에서 쓰인다면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울테다..
그 분, 그 양반, 그 사람, 갸, 그남자, 그여자 정도가 구어에서 무난하게 쓰일것 같다.
우리 시대의 언어 게임 by 고길섶
괴짜 '그녀'의 탄생 설화
괴짜 '그녀'의 탄생 설화 한국전쟁 이후 1954년,우리말에 커다란 일이 하나 일어났다. 문단에서 여성 3인칭 대명사를 돌연 "그녀"라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 라는 표현은 순식간에 확산되어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이고 영화,방송 등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대략 1910년대 이후 여성 3인칭 표현에 대한 시도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더니 오랜 기간을 거쳐,한국 전쟁 이후 전격적으로 "그녀"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여성을 3인칭 방식으로 독자적으로 호출하고자 30년 이상의 실험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그녀"로 모아진 셈이다.
여성 3인칭 대명사를 잡아라 우리말에서는 원래 여성 3인칭대명사를 표현하는 말이 없었다. 신문화가 들어오면서 특히 신문학을 중심으로 영어의 "she" 를 어떤 말로 대응시킬 것이냐가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 라는 말도 원래 우리말에서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그 곳", "그 때", "그 양반" 에서처럼 지시관형사로 사용되었다. "그"가 인칭대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신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3인칭 대명사로 "궐 (厥-'그' 의 뜻) 이니 "궐자" (厥者)니 "그이" 니 하며 여러 가지로 시도하다가 결국 "그" 로 낙착이 되었으나,"그" 는 남자와 여자의 성구별이 없는 공용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1919년 이광수는 '매일신보' 에 연재하는 처녀작 '무정' 에서 극히 드물게나마 "그"를 여성과 남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함께 사용하였다. "그가 나이 이십이 되도록 한번도 자기의 뜻에 맞는 남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에서는 "그" 가 여성을 가리키고, "그는 어떤 사람이며, 그와 월화의 관계는 장차 어찌 될는고" 에서는 "그" 가 남성을 가리킨다. 이미 이전 1913년에 조중환은 '매일신보' 연재소설 '장만몽' 에서 "그 여자" 라고 쓰기도 하였다. "내가 어찌하여 그 여자를 대하여 보리요". 이광수도 1934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제목을 '그 여자의일생' 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여자" 를 간혹 사용하기도 하나 주로 "그"를 썼다.
그러던 중 문인들은 문학상의 혼동과 불투명성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남성 3인칭대명사에 국한하여 쓰고 여성 3인칭대명사는 따로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 김동인, 양주동 등이 "궐녀"(厥女)란 말을 잠깐 써보았고, 나중에 다시 해외문학파에서 "그네"란 말을 쓰겠노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둘 다 유야무야 중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 하였다. "she" 를 "궐녀"라고 번역한 것은 1920 년대 이전의 일이다. 그 시기에 "he" 는 "저"나 "궐자"라고 번역되었다. 1925년 '개벽'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및 저의 작품"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든 "그 여자"든 "궐녀"든 3인칭대명사 사용하기를 꺼리며 고유 명사를 직접 사용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그녀"가 1954년에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1926 년 8월에 발표된 것으로 된 양주동의 '신혼기' 에서 이미 보인다; "어려서 나와 곧잘 '연애'에 가까운 정다운 교제를 하였던 '연뽕'이라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의 궁상에 동정하여 약간의 '찬거리'를 종종 담 너머로 날라다 주었다."
그녀, 그네, 그미, 그니, 그리고 '그년'? 1954년 이후 "그녀"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으면서도 일단의 사람들은 이것에 불만을 표시하였고, 마침내 그 10년 후에는 잡지사에서 이에 대해 집중토론을 벌였다. '현대문학' 1965년 3월호는 최현배, 이숭녕, 허웅, 김형규,류창돈, 김석호, 김동리 등 7명의 견해를 실었다.
이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자.
최현배는 먼저 "그녀"를 맹렬히 공격한다. "그녀"는 일본말의 조어 "가노죠" (彼女 일본 애니메이션 카레 카노의 바로 그 카노죠입니다.타이피스트 주. --; ) 를 흉내낸 말이라고 단언하였다. 일본에서는 "he" 와 "she" 에 대응하여 "彼" (가레) 와 "彼女" 라는 번역어를 각각 만들어내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가 이미 19세기말이었다. 그러나 번역어로부터 문학어로 승격하여 "가노죠" 가 문단에서 왕성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이후의 일이다. 최현배는 여기서 이중으로 문제삼는다. 일본말 조어도 억지라는 것이다. "女" 는 한자말 (미녀, 소녀, 여자 등) 외에는 따로 쓰이지 않으므로 "가노"와 합성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일본의 억지 조어를 흉내낸 데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는 "그녀"는 관형사 '그'와 '女' 를 합성한 것이므로 "그여" 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관형사 다음에 '女' 를 쓰는 것이므로 낱말의 첫소리 발음 원칙 - 예컨대 "연배" (年輩) - 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합리 외에도 "그녀는" 으로 발음할 경우 "그 년은" 이라는 욕설로 들린다는 점에서 최현배는 "그녀"를 적극 반대한다
이어서 최현배는 대안으로, 예전에 그가 제안한 적이 있는 "그씨", "그분"을 폐기하고, "그미" 를 제시한다. 그 근거로써, "-미" 는 여자들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비", "오라비", "할아비" 따위로 불려지는 반면 여자는 "어미", "할미", "아지미" 따위로 불려진다.
이숭녕은 여성 3인칭대명사의 제정 실험에서 실패한 것으로 진단하고 작가들의 통일된 협력을 요구하면서 "그녀"라는 말을 옹호한다. 대중들의 통용어로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이미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쓰인다는 것이다. "그미"나 "그네"등 여타의 말들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허웅은 고민해 보지 않은 사안을 편집자의 청탁으로 마지못해 쓴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최현배는 몇 십년을 고민하였다고 하나 그 후계자인 허웅은 여성 3인칭대명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허웅은 아주 재미있는 발언을 한다. "이분"/"그분"/"저분" 및 "이이"/"그이"/"저이" 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공히 사용되는 3인칭대명사인데, 여자들은 이 모두를 남자들에게 양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가운데 한 계열을 여자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한다. 즉, 그는 "나도 남성인지라, 우리 대명사를 모두 여성에게 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나, 여럿이 있다면 그 중의 하나쯤은 - 그것도 아름다운 말을 - 양보할 정도의 페미니스트는 된다" 고 말하면서, "이이"/"그이"/"저의" 의 계열을 여성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한다.
허웅에게 특이한 점은 언어에 있어서 '성' (性) 문제를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논객들은 모두 여성 3인칭대명사 문제를 주로 기술상의 문제에서 고려하고 있는데 반해 허웅이 성문제롤 관찰하고 있음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로 보인다. 그는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문법상의 변혁 가능성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원래 성의 표시가 없는 우리말의 인칭대명사에 성을 도입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법범주를 하나 만들어 넣는 셈" 이라고 의미 짓는다. 허웅의 입장은 남자들에게만 전용화 되고 있는 3인칭대명사를 여자들에게 전용화할 수 있는 말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상은 분명 언어사용에 있어서 여성의 지위를 높여주자는 것이다.
김형규는 먼저 우리말의 인칭대명사가 '존비' (尊卑)의 관계만 분명 할 뿐 성구별은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he" 에 해당하는 남성 3인칭 대명사는 내버려두면서 "she" 에 해당하는 3인칭대명사만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남존여비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 그는 언중의 선택을 중요시하면서도 일단 "그녀"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3인칭대명상의 존칭별 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머니나 아주머니 등을 "그녀"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낮춤말은 "그놈"에 대비하여 "그년" 또는 "그 계집" 이 있으나 높임말은 남성 전용으로 쓰는 "그이"나 "그 어른" 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류창돈은 특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현행 사용되거나 대안으로 제기되는 말들, 즉 "그녀", "그네", "그히", "그니", "그미", "그매"의 근거에 대해서 분석한다. "그네" 는 "그" 에다 여성과 여성적 명칭에 잘 붙는 접미사 "네"를 합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네들" 하면 "그 여자들" 인지 "그 남자들" 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별로 문제되지 않으리라 본다. "그히" 는 "그희"의 오기로 보아 "그녀"와 같은 구조로 분석한다. 즉, '그 + 嬉' 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니"와 "그매"는 유래가 확실치 않다. 김석호는 "그녀"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한다. "그녀"라고 하면, 그것이 일어의 직역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여인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깨진다는 점에서이다. "그년" 이라는 욕설과 유사해 보여 불쾌감마저 준다. 하나의 대안으로서 "그매"를 내놓는다. "아지매", "엄매"," 할매"에서 근건하고, 또한 "몸매", "눈매" 따위의 말들에서 아름답고 곱고 예쁜 어감이 표상되기 때문이다. 즉, "그매" 에서는 여성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모습이 이글거리고 동양적인 여성의 전형성을 찾아볼수 있는 이미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또한 서민적이기 때문에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석호의 주장은 여성을 '여성적이게' 길들이려는 맥락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김동리는 "그녀"를 옹호한다. 여기서 그는 반대론자들이 "그녀"의 어원을 해석하는 것과는 다르게 해석하여 그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반대론자들은 "그녀"가 '그 + 女" 의 구조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말+한자말'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식으로 우리말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김동리는 "울녀" 라는 말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론을 뒤집는다. '큰사전' 에서 "울녀" 는 "잘 우는 버릇이 있는 계집아이"로 풀이한다. 이에 대하여 사전은 "울남"도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녀" 는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일어 "가노죠" 를 흉내낸 말이라는 비난도 비판한다. "가노죠" 를 직역하면 "저의녀"가 된다고 한다. 또한 "그녀" 로 사용하는 것은 한일 두 민족의 고유한 말과 한자말과의 관계에서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 는 이미 "울녀" 나 또는 "어진녀" 와 같은 계열로 연결되고 있는데,왜 "가노죠"를 끄집어 들이냐고 김동리는 격분한다.
'현대문학' 은 동시에 작가 54명에게 현재 쓰고 있는 여성 3인칭 대명사가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그녀"가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이중답변을 포함하여 응답에 나타는 결과를 보면 "그녀"가 33명, "그네" 가 7명, "그"가 6명, "그여자"가 4명, "그니" 가 2명, 그리고 "그미"와 "그여"가 각 1명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고유명사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사람이 4명, 여성 인칭대명사를 되도록 피한다는 사람이 2명이었다.
글말에서는 "그녀"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최고의 약점은 입말에서는 잘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 "그 년" 이라는 욕설로 오해되기 때문인 것 같다. 입말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그녀" 는 위협을 간간이 받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1974년 교육계와 어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국어순화운동 전국연합회는 바르고 고운말을 쓰자는 표제하에 "그녀"를 쓰지 말 것을 대중들에게 호소하였다. 그 이유로서는, 최현배의 논리에 따라, 1) 조어법상 듣기 거북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1989년에 이오덕은 '우리글 바로쓰기' 에서 비슷한 이유에서 "그녀" 를 문제삼았다. 그리고 1991년에는 시인 여영택이 '한글새소식'에서 "그냐" 를 제안하였다. 우리말에서 "여드레" 를 "야드레" 로, "여위다" 를 "야위다" 등으로 쓰여왔다는 점을 근거로 "녀"를 "냐" 로 바꿔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 3인칭 대명사로서 여성을 "그녀" 로 호출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개입할 수 있다. 하나는 여성을 더욱 여성이게 만드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남성에 대항하여 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경우이다. "그녀" 라는 말은 첫 번째 의미에서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부드럽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어감으로 말이다. "그" 라는 표현으로서는 도저히 그런 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를 가리킨다는 이미지가 잔뜩 들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만 "그녀" 를 사용하려 한다면 곤란하다. '강인한 남성' / '부드러운 여자' 라는 대비는 성구별을 넘어서 성 차별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의미, 즉 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맥락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남자를 호출하는 인상이 강한 "그" 에게서 독립하여 "그녀" 로 당당히 사용하는 것은 여성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해준다. 여성을 표현하는 이름을 여성들이 고유하게 갖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것은 침묵과 억압과 소외로부터 말하기와 참여와 해방의 길을 열어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 로 부르는 것은 또 고유 이름으로 부르는 방식과 다르다. 고유이름은 개별자의 호출이라는 제한성을 가지지만 "그녀" 와 같이 부르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이 내포된다. "그녀" 는 특정한 한 여자를 지칭하면서도 그 둘레에는항상 여성들의 어떤 이미지를 정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남자들이 지어 준 이름이다. 심지어는 "그년" 으로 불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녀"로 여성을 표현한다고 해서 항상 여성의 지위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남성의 공격적 대명사로 전복될 수도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사용되느냐가 관건이므로, 따라서 "그녀"라는 표현에는 항상 성적 모순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요컨대, "그녀"로 현재 통용되는 것을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 말은 누가 강제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흐름에 따른다. 그 흐름에 따라 다른 날에는 "그녀"가 다른 말로 바뀌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말들의 경합 원칙이다. "그녀" 는 여성 3인칭대명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의 실험과 경합에서 승리하였다. 누구든지 필요에 따라 말을 만들어 내는 일은 자유로운 일이다.
언어가 사회성을 갖는다 해서 개인들의 말 만드는 창조성을 부정하는 것은 언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 각각에 사용되는 말들에는 말맛이나 권력관계가 표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말은 하나의 언어적 실험이다. 만든 사람이 누구든 간에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있으면 통용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금방 소멸될 것이다. 통용되는 말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자유로운 일이다. 그 역시 대중 효과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지시물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로 중첩될 수도 있다. "그 여자" 라고도 할 수 있여며 "그녀"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미" 라고도 가능하다. 단 하나의 말이 진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 것들이 여러 가지 효과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음이 진리이다. 말들의 역사와 현실은 바로 이러하다. 문인들이 "그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최현배와 같은 국어학자는 "그미" 를 주장하였다. 어원적 원리로는 타당해 보여도 사람들은 이미 정서적으로 "그녀"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녀" 를 막고자 하는 최현배보다는 오히려 김동리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한 윤정모는 최근 소설 '고삐' 에서, "그녀" 대신 "그니" 라고 표현한다; "어쨌거나 정인에겐 그곳은 벼논, 자신은 메뚜기였다. 그니는 포식을 위해 술을 따르라면 술을, 춤을 추라면 춤을 추었다.... 밤마다 한 웅큼의 지폐가 그니 손으로 굴러들었다."
개화기 이후 여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 실험들은 현대적 삶으로의 전환기에서 여성을 호출하는 언어적 실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남성들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의 존재와 지위를 구체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여성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도 관련된다. 남성 3인칭대명사와 대비하여 여성의 그것을 통용시키려고 노력한 시도들은, 영어의 "she" 나 일본어의 "가노죠" 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는 비판과는 무관하게, 전통적 삶을 새로운 방식의 현대적 삶으로 재구성 하려는 것과 맞물려 있었다. 그 현대적 삶의 양식에 성의 모순이 개입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여성 3인칭 대명사 사용의 문제였다.
그런데 말이다.왜 "그녀"가 한국전쟁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되었을까
she를 항상 "그미"라고 해석해놓길래
지레.. 일본 영한사전 베끼면서 그네들의 언어습관인가보다 싶었다..
즉, 그미(美)라고 쓰는 겐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최현배의 주장이 반영된 거였다고..(아래 펌글 참조)
초기의 영중사전엔 he를 他, 皮, 伊등으로 번역하고 she는 마땅한 번역어는 없다고 풀이하고 그저 여성을 칭하는 他, 皮, 伊로만 번역했고..
초기 화일사전(19세기 말)에서야 皮, 皮女로 번역한 사례가 있다고 하니... she의 번역은 일본 특유의 조어라 할수 있는듯..(From 번역어 성립사정)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후에서나 "그녀"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었다고 하니 그만큼 익숙하기 힘든 언어 습관이긴하다.. 현재도 "그"나 "그녀"가 구어에서 쓰인다면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울테다..
그 분, 그 양반, 그 사람, 갸, 그남자, 그여자 정도가 구어에서 무난하게 쓰일것 같다.
우리 시대의 언어 게임 by 고길섶
괴짜 '그녀'의 탄생 설화
괴짜 '그녀'의 탄생 설화 한국전쟁 이후 1954년,우리말에 커다란 일이 하나 일어났다. 문단에서 여성 3인칭 대명사를 돌연 "그녀"라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 라는 표현은 순식간에 확산되어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이고 영화,방송 등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대략 1910년대 이후 여성 3인칭 표현에 대한 시도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더니 오랜 기간을 거쳐,한국 전쟁 이후 전격적으로 "그녀"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여성을 3인칭 방식으로 독자적으로 호출하고자 30년 이상의 실험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그녀"로 모아진 셈이다.
여성 3인칭 대명사를 잡아라 우리말에서는 원래 여성 3인칭대명사를 표현하는 말이 없었다. 신문화가 들어오면서 특히 신문학을 중심으로 영어의 "she" 를 어떤 말로 대응시킬 것이냐가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 라는 말도 원래 우리말에서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그 곳", "그 때", "그 양반" 에서처럼 지시관형사로 사용되었다. "그"가 인칭대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신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3인칭 대명사로 "궐 (厥-'그' 의 뜻) 이니 "궐자" (厥者)니 "그이" 니 하며 여러 가지로 시도하다가 결국 "그" 로 낙착이 되었으나,"그" 는 남자와 여자의 성구별이 없는 공용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1919년 이광수는 '매일신보' 에 연재하는 처녀작 '무정' 에서 극히 드물게나마 "그"를 여성과 남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함께 사용하였다. "그가 나이 이십이 되도록 한번도 자기의 뜻에 맞는 남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에서는 "그" 가 여성을 가리키고, "그는 어떤 사람이며, 그와 월화의 관계는 장차 어찌 될는고" 에서는 "그" 가 남성을 가리킨다. 이미 이전 1913년에 조중환은 '매일신보' 연재소설 '장만몽' 에서 "그 여자" 라고 쓰기도 하였다. "내가 어찌하여 그 여자를 대하여 보리요". 이광수도 1934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제목을 '그 여자의일생' 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여자" 를 간혹 사용하기도 하나 주로 "그"를 썼다.
그러던 중 문인들은 문학상의 혼동과 불투명성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남성 3인칭대명사에 국한하여 쓰고 여성 3인칭대명사는 따로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 김동인, 양주동 등이 "궐녀"(厥女)란 말을 잠깐 써보았고, 나중에 다시 해외문학파에서 "그네"란 말을 쓰겠노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둘 다 유야무야 중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 하였다. "she" 를 "궐녀"라고 번역한 것은 1920 년대 이전의 일이다. 그 시기에 "he" 는 "저"나 "궐자"라고 번역되었다. 1925년 '개벽'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및 저의 작품"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든 "그 여자"든 "궐녀"든 3인칭대명사 사용하기를 꺼리며 고유 명사를 직접 사용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그녀"가 1954년에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1926 년 8월에 발표된 것으로 된 양주동의 '신혼기' 에서 이미 보인다; "어려서 나와 곧잘 '연애'에 가까운 정다운 교제를 하였던 '연뽕'이라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의 궁상에 동정하여 약간의 '찬거리'를 종종 담 너머로 날라다 주었다."
그녀, 그네, 그미, 그니, 그리고 '그년'? 1954년 이후 "그녀"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으면서도 일단의 사람들은 이것에 불만을 표시하였고, 마침내 그 10년 후에는 잡지사에서 이에 대해 집중토론을 벌였다. '현대문학' 1965년 3월호는 최현배, 이숭녕, 허웅, 김형규,류창돈, 김석호, 김동리 등 7명의 견해를 실었다.
이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자.
최현배는 먼저 "그녀"를 맹렬히 공격한다. "그녀"는 일본말의 조어 "가노죠" (彼女 일본 애니메이션 카레 카노의 바로 그 카노죠입니다.타이피스트 주. --; ) 를 흉내낸 말이라고 단언하였다. 일본에서는 "he" 와 "she" 에 대응하여 "彼" (가레) 와 "彼女" 라는 번역어를 각각 만들어내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가 이미 19세기말이었다. 그러나 번역어로부터 문학어로 승격하여 "가노죠" 가 문단에서 왕성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이후의 일이다. 최현배는 여기서 이중으로 문제삼는다. 일본말 조어도 억지라는 것이다. "女" 는 한자말 (미녀, 소녀, 여자 등) 외에는 따로 쓰이지 않으므로 "가노"와 합성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일본의 억지 조어를 흉내낸 데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는 "그녀"는 관형사 '그'와 '女' 를 합성한 것이므로 "그여" 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관형사 다음에 '女' 를 쓰는 것이므로 낱말의 첫소리 발음 원칙 - 예컨대 "연배" (年輩) - 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합리 외에도 "그녀는" 으로 발음할 경우 "그 년은" 이라는 욕설로 들린다는 점에서 최현배는 "그녀"를 적극 반대한다
이어서 최현배는 대안으로, 예전에 그가 제안한 적이 있는 "그씨", "그분"을 폐기하고, "그미" 를 제시한다. 그 근거로써, "-미" 는 여자들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비", "오라비", "할아비" 따위로 불려지는 반면 여자는 "어미", "할미", "아지미" 따위로 불려진다.
이숭녕은 여성 3인칭대명사의 제정 실험에서 실패한 것으로 진단하고 작가들의 통일된 협력을 요구하면서 "그녀"라는 말을 옹호한다. 대중들의 통용어로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이미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쓰인다는 것이다. "그미"나 "그네"등 여타의 말들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허웅은 고민해 보지 않은 사안을 편집자의 청탁으로 마지못해 쓴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최현배는 몇 십년을 고민하였다고 하나 그 후계자인 허웅은 여성 3인칭대명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허웅은 아주 재미있는 발언을 한다. "이분"/"그분"/"저분" 및 "이이"/"그이"/"저이" 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공히 사용되는 3인칭대명사인데, 여자들은 이 모두를 남자들에게 양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가운데 한 계열을 여자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한다. 즉, 그는 "나도 남성인지라, 우리 대명사를 모두 여성에게 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나, 여럿이 있다면 그 중의 하나쯤은 - 그것도 아름다운 말을 - 양보할 정도의 페미니스트는 된다" 고 말하면서, "이이"/"그이"/"저의" 의 계열을 여성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한다.
허웅에게 특이한 점은 언어에 있어서 '성' (性) 문제를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논객들은 모두 여성 3인칭대명사 문제를 주로 기술상의 문제에서 고려하고 있는데 반해 허웅이 성문제롤 관찰하고 있음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로 보인다. 그는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문법상의 변혁 가능성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원래 성의 표시가 없는 우리말의 인칭대명사에 성을 도입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법범주를 하나 만들어 넣는 셈" 이라고 의미 짓는다. 허웅의 입장은 남자들에게만 전용화 되고 있는 3인칭대명사를 여자들에게 전용화할 수 있는 말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상은 분명 언어사용에 있어서 여성의 지위를 높여주자는 것이다.
김형규는 먼저 우리말의 인칭대명사가 '존비' (尊卑)의 관계만 분명 할 뿐 성구별은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he" 에 해당하는 남성 3인칭 대명사는 내버려두면서 "she" 에 해당하는 3인칭대명사만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남존여비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 그는 언중의 선택을 중요시하면서도 일단 "그녀"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3인칭대명상의 존칭별 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머니나 아주머니 등을 "그녀"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낮춤말은 "그놈"에 대비하여 "그년" 또는 "그 계집" 이 있으나 높임말은 남성 전용으로 쓰는 "그이"나 "그 어른" 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류창돈은 특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현행 사용되거나 대안으로 제기되는 말들, 즉 "그녀", "그네", "그히", "그니", "그미", "그매"의 근거에 대해서 분석한다. "그네" 는 "그" 에다 여성과 여성적 명칭에 잘 붙는 접미사 "네"를 합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네들" 하면 "그 여자들" 인지 "그 남자들" 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별로 문제되지 않으리라 본다. "그히" 는 "그희"의 오기로 보아 "그녀"와 같은 구조로 분석한다. 즉, '그 + 嬉' 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니"와 "그매"는 유래가 확실치 않다. 김석호는 "그녀"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한다. "그녀"라고 하면, 그것이 일어의 직역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여인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깨진다는 점에서이다. "그년" 이라는 욕설과 유사해 보여 불쾌감마저 준다. 하나의 대안으로서 "그매"를 내놓는다. "아지매", "엄매"," 할매"에서 근건하고, 또한 "몸매", "눈매" 따위의 말들에서 아름답고 곱고 예쁜 어감이 표상되기 때문이다. 즉, "그매" 에서는 여성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모습이 이글거리고 동양적인 여성의 전형성을 찾아볼수 있는 이미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또한 서민적이기 때문에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석호의 주장은 여성을 '여성적이게' 길들이려는 맥락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김동리는 "그녀"를 옹호한다. 여기서 그는 반대론자들이 "그녀"의 어원을 해석하는 것과는 다르게 해석하여 그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반대론자들은 "그녀"가 '그 + 女" 의 구조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말+한자말'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식으로 우리말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김동리는 "울녀" 라는 말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론을 뒤집는다. '큰사전' 에서 "울녀" 는 "잘 우는 버릇이 있는 계집아이"로 풀이한다. 이에 대하여 사전은 "울남"도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녀" 는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일어 "가노죠" 를 흉내낸 말이라는 비난도 비판한다. "가노죠" 를 직역하면 "저의녀"가 된다고 한다. 또한 "그녀" 로 사용하는 것은 한일 두 민족의 고유한 말과 한자말과의 관계에서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 는 이미 "울녀" 나 또는 "어진녀" 와 같은 계열로 연결되고 있는데,왜 "가노죠"를 끄집어 들이냐고 김동리는 격분한다.
'현대문학' 은 동시에 작가 54명에게 현재 쓰고 있는 여성 3인칭 대명사가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그녀"가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이중답변을 포함하여 응답에 나타는 결과를 보면 "그녀"가 33명, "그네" 가 7명, "그"가 6명, "그여자"가 4명, "그니" 가 2명, 그리고 "그미"와 "그여"가 각 1명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고유명사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사람이 4명, 여성 인칭대명사를 되도록 피한다는 사람이 2명이었다.
글말에서는 "그녀"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최고의 약점은 입말에서는 잘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 "그 년" 이라는 욕설로 오해되기 때문인 것 같다. 입말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그녀" 는 위협을 간간이 받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1974년 교육계와 어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국어순화운동 전국연합회는 바르고 고운말을 쓰자는 표제하에 "그녀"를 쓰지 말 것을 대중들에게 호소하였다. 그 이유로서는, 최현배의 논리에 따라, 1) 조어법상 듣기 거북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1989년에 이오덕은 '우리글 바로쓰기' 에서 비슷한 이유에서 "그녀" 를 문제삼았다. 그리고 1991년에는 시인 여영택이 '한글새소식'에서 "그냐" 를 제안하였다. 우리말에서 "여드레" 를 "야드레" 로, "여위다" 를 "야위다" 등으로 쓰여왔다는 점을 근거로 "녀"를 "냐" 로 바꿔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 3인칭 대명사로서 여성을 "그녀" 로 호출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개입할 수 있다. 하나는 여성을 더욱 여성이게 만드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남성에 대항하여 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경우이다. "그녀" 라는 말은 첫 번째 의미에서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부드럽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어감으로 말이다. "그" 라는 표현으로서는 도저히 그런 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를 가리킨다는 이미지가 잔뜩 들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만 "그녀" 를 사용하려 한다면 곤란하다. '강인한 남성' / '부드러운 여자' 라는 대비는 성구별을 넘어서 성 차별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의미, 즉 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맥락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남자를 호출하는 인상이 강한 "그" 에게서 독립하여 "그녀" 로 당당히 사용하는 것은 여성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해준다. 여성을 표현하는 이름을 여성들이 고유하게 갖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것은 침묵과 억압과 소외로부터 말하기와 참여와 해방의 길을 열어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 로 부르는 것은 또 고유 이름으로 부르는 방식과 다르다. 고유이름은 개별자의 호출이라는 제한성을 가지지만 "그녀" 와 같이 부르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이 내포된다. "그녀" 는 특정한 한 여자를 지칭하면서도 그 둘레에는항상 여성들의 어떤 이미지를 정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남자들이 지어 준 이름이다. 심지어는 "그년" 으로 불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녀"로 여성을 표현한다고 해서 항상 여성의 지위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남성의 공격적 대명사로 전복될 수도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사용되느냐가 관건이므로, 따라서 "그녀"라는 표현에는 항상 성적 모순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요컨대, "그녀"로 현재 통용되는 것을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 말은 누가 강제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흐름에 따른다. 그 흐름에 따라 다른 날에는 "그녀"가 다른 말로 바뀌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말들의 경합 원칙이다. "그녀" 는 여성 3인칭대명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의 실험과 경합에서 승리하였다. 누구든지 필요에 따라 말을 만들어 내는 일은 자유로운 일이다.
언어가 사회성을 갖는다 해서 개인들의 말 만드는 창조성을 부정하는 것은 언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 각각에 사용되는 말들에는 말맛이나 권력관계가 표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말은 하나의 언어적 실험이다. 만든 사람이 누구든 간에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있으면 통용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금방 소멸될 것이다. 통용되는 말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자유로운 일이다. 그 역시 대중 효과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지시물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로 중첩될 수도 있다. "그 여자" 라고도 할 수 있여며 "그녀"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미" 라고도 가능하다. 단 하나의 말이 진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 것들이 여러 가지 효과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음이 진리이다. 말들의 역사와 현실은 바로 이러하다. 문인들이 "그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최현배와 같은 국어학자는 "그미" 를 주장하였다. 어원적 원리로는 타당해 보여도 사람들은 이미 정서적으로 "그녀"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녀" 를 막고자 하는 최현배보다는 오히려 김동리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한 윤정모는 최근 소설 '고삐' 에서, "그녀" 대신 "그니" 라고 표현한다; "어쨌거나 정인에겐 그곳은 벼논, 자신은 메뚜기였다. 그니는 포식을 위해 술을 따르라면 술을, 춤을 추라면 춤을 추었다.... 밤마다 한 웅큼의 지폐가 그니 손으로 굴러들었다."
개화기 이후 여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 실험들은 현대적 삶으로의 전환기에서 여성을 호출하는 언어적 실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남성들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의 존재와 지위를 구체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여성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도 관련된다. 남성 3인칭대명사와 대비하여 여성의 그것을 통용시키려고 노력한 시도들은, 영어의 "she" 나 일본어의 "가노죠" 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는 비판과는 무관하게, 전통적 삶을 새로운 방식의 현대적 삶으로 재구성 하려는 것과 맞물려 있었다. 그 현대적 삶의 양식에 성의 모순이 개입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여성 3인칭 대명사 사용의 문제였다.
그런데 말이다.왜 "그녀"가 한국전쟁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