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daum.net/rosy900/5664140
周
1.주(周,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나라는 상나라을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 시대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 중엽에 서쪽의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中原)을 지배했다. 주나라의 청동기문화권이 최근의 조사에서는, 중원에서 더욱 남쪽 지방인 장쑤(江蘇),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 등의 양쯔강 유역에까지 미친 것이 확실해졌다. 이 광대한 지배권을 유효하게 통치하는 조직이 봉건제도이다. 주 왕조는 농업을 장려하고 농지의 개척을 진척하였으나 농기구는 목제나 석제의 기구였다. [1]
西周/东周
견융이 침략하여 기원전 771년 유왕이 살해되고 제후에 의해 옹립된 평왕이 호경(鎬京, 현재의 시안 시 부근)에서 부도(副都) 낙읍(洛邑, 현재의 뤄양 시)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 이후를 동주(기원전 770년 ~ 기원전 256년)라고 구분한다.[1]
춘추시대(BC 770~476)/戰國時代BC 475~221
2.武周
[
3.[
商나라
상(商, 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나라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 여겨지는 최초의 중국 왕조이다. 반경(盤庚)이 옮긴 마지막 도읍이 은(殷)이기 때문에, 은이라고도 부른다.
[
韩나라
[
춘추 시대에 열국의 강국 진(晋)이 조·위·한의 3국으로 분열되어 동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은
전국칠웅(战国七雄)
战国七雄은 전국시대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나라를 지칭한다. 전국시대에는 그 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있었으나, 이들 일곱 나라가 가장 강력했고 중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戰國時代
춘추시대(BC 770~476)/戰國時代BC 475~221
전국시대 [Warring States, 戰國時代]
중국에서 각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BC 475~221).
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대 중의 하나이다. 이 시대에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를 비롯하여 많은 사상가가 등장했고, 이후 2,000년 동안 중국을 특징짓는 정부구조와 문화양식이 형성되었다. 전국이라는 이름은 이 시기의 역사를 다룬 고대의 역사서 〈전국책 戰國策〉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국시대는 더 작은 나라들로 쪼개어져 있던 그 이전의 춘추시대(BC 770~476)와 구분된다. 춘추시대초에 100여 개 나라로 분열되어 있던 중국은 전국시대에 이르러 한(韓)·위(魏)·조(趙)·제(齊:田齊)의 4개 신흥국과 진(秦)·초(楚)·연(燕)의 3개 구국으로 축소되었는데, 이 7국을 '전국7웅'이라고 한다. 이 7국들간의 오랜 전쟁 끝에 BC 223년 마침내 진이 초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2년 후에 전국을 통일해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수립했다.→
春秋時代
춘추 시대(중국어: 春秋時期, 병음: Chūnqiū Shíqi: 기원전 770~403)는 중국의 역사에서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 사이의 시기를 말하며, 주나라의 동천 이후 진나라의 중국 통일까지의 시기를 부르는 춘추 전국 시대의 전반기에 해당된다.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와의 경계는 춘추 시대에 열국의 강국 진(晋)이 조·위·한의 3국으로 분열되어 동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은 기원전 403년까지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진의 집정하에 있던 지백(知伯)을 멸망시키고 사실상 3국의 분립이 성공한 기원전 453년으로 올려 잡는 설도 있다.[1]
중국의 고대 춘추 시대 제후 간 회맹(會盟)의 맹주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제(齊) 환공,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월(越) 구천이 있다.
한편 진 목공, 송 양공, 오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晉나라
[
春秋时代:BC 770-403/周国 BC 1046-BC 256/汾水:在山西省中部
秦나라
진나라(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는 시황제에 의해 전국 시대를 통일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다. 전신은 현재의 산시성지역에 있던 진 백작국(전국시대에는 왕을 칭함)이며, 그 이름은 진의 초기 중심지인 진(秦) 땅에서 비롯했다. 진왕조의 국력은 기원전 4세기 경 전국 시대에 상앙이 행한 법가에 따른 개혁에 의해 급속도로 강성해졌다. 기원전 3세기 중후반에, 진왕조는 국력이 약했던 주나라를 시작으로, 전국 칠웅을 모두 정복하고 통일을 이룩했다.진나라의 지배기간동안, 진은 무역을 증가시켰고,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치안을 강화했다. 이는 토지 지주제를 폐지했기 때문인데, 이로써 중앙정부가 국민들을 직접 통치할 수 있었다. 이는 만리장성과 같은 대형 공사들을 할 수 있게 된 토대가 되었다. 진제국은 또한 화폐, 도량형 통일등의 많은 개혁을 했다. 군사력 역시 발전하여, 전술이나 무기, 운송체계 등이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예전 나라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서갱유와 같은 일도 벌였다.
진나라의 군사력은 비록 강성했지만, 진나라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신하들은 그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고, 결국 신하들과 진 황제가 모두 사망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몇년 후 국민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멸망했다.
陳나라
진나라를 건국한 진패선(陳覇先)은 미천한 가문의 군인 출신으로 후경(後景)의 난에 유능한 지휘관으로 난을 진압하고, 원제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웠다. 북제(北齊)에게 동조한 소연명(蕭淵明)을 제위에 올린 동료 왕승변(王僧弁)을 타도하고 경제을 추대하였으나, 이후 경제의 선양을 받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한수(漢水) 유역과 사천성은 서위를 이은 북주에게 빼앗겼고, 거기에 양자강 중하류를 사이에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사실상 양나라 때에 비해 영토가 크게 축소하여 남조 왕조 중 가장 국력이 약소했다.
진패선은 왕승변의 부장과 강남의 토호의 반란을 평정하다 죽고, 형 시흥왕 진도담의 아들 문제가 제위를 물려받아 영주를 확보하고, 북주를 비롯한 북제, 후량과 대치했다. 문제(文帝)는 내정에 전념하여 국내를 안정시켰다.
문제의 아들 임해왕 때 북주, 후량과 내통한 화교의 난을 평정했으나, 실권을 장악한 4대 선제(宣帝)가 그를 폐위하고 즉위하여 국력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575년 명장 오명철(吳明徹)을 시켜 북제를 공격해, 숙적 왕림(王琳)을 죽이고 수양을 빼앗아 강북으로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때 북제를 병합한 북주가 진나라를 공격하려 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수나라가 이를 대신한다. 수나라 문제는 재빨리 남정을 계획하였고, 그동안 진나라는 후주가 즉위해 사치와 향략을 일삼아 국력이 피폐했다. 수나라는 진왕 양광을 총지휘관으로 삼아 하약필, 한금호를 선봉으로 강을 건너 건강을 함락하고,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400년에 걸쳐 분열되었던 위진남북조시대가 종결되고 중국은 통일되었다.
진나라는 남조 귀족제가 후경의 난을 거치며 해체되어 무제 때 중서통사사인 채경력같은 한문 출신들이 군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담당했다. 후주도 시문경, 심용경 등의 한문 출신을 측근으로 기용했기에, 국가의 주석이었던 무장 노광달, 소마가, 임충 등을 멀리했기에 문무 해체가 된 나라는 멸망하게 된 것이다. 다만 후주의 시대는 문화가 융성하여 문학에 강총, 서릉 등이 있었고, 불교도 문무 관료에게 신앙받았다. 나라가 멸망할 때 호구 50만, 인구 200만 명이었다. 이후 육조 문화에 근간을 둔 수나라, 당나라의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565년, 진나라는 사신 유사(劉思)와 승려 명관(明觀)을 신라로 보내 예방하고, 불교 경론(經論) 1천7백여 권을 보내주었다.[1] 566년, 567년, 568년, 570년, 571년에 신라는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2] [3] [4] [5][6]
역대 황제[편집]
대수 | 묘호 | 시호 | 성명 | 연호 | 재위기간 |
---|---|---|---|---|---|
- | 진 태조 (陳太祖) (진 무제 추숭) |
경황제 (景皇帝) |
진문찬(陳文讚) | - | - |
- | - | 시흥소열왕 (始興昭烈王) (진 무제 추숭) |
진도담(陳道譚) | - | - |
제1대 | 진 고조 (陳高祖) |
무황제 (武皇帝) |
진패선(陳覇先) | 영정(永定)557년 ~ 559년 | 557년 ~ 559년 |
제2대 | 진 세조 (陳世祖) |
문황제 (文皇帝) |
진천(陳蒨) | 천가(天嘉) 560년 ~ 566년 천강(天康) 566년 |
559년 ~ 566년 |
제3대 | - | 폐황제 (廢皇帝) (임해왕<臨海王>) |
진백종(陳伯宗) | 광대(光大) 567년 ~ 568년 | 566년 ~ 568년 |
제4대 | 진 고종 (陳高宗) |
효선황제 (孝宣皇帝) |
진욱(陳頊) | 태건(太建) 569년 ~ 582년 | 569년 ~ 582년 |
제5대 | - | - (진 후주<陳後主>, 장성양공<長城煬公>) |
남북조시대
http://ko.wikipedia.org/wiki/%EB%82%A8%EB%B6%81%EC%A1%B0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20~589)는 한족이 세운 남조와 유목민족이 세운 북조가 대립하다,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 강남에는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4개 왕조가 차례로 흥망했는데, 이것을 가리켜 남조(南朝)라고 불렀다. 또한 같은 건강(建康; 건업(建業)의 새이름)을 수도로 삼았던 삼국시대의 오나라와 동진을 합쳐 육조(六朝)라고 불러 이 시대를 육조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나, 이는 주로 문화사를 다룰 때 쓰이는 시대 구분이다.
이 시대 강남이 크게 개발되어, 이후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강남은 중국 전체의 경제 기반이 되었다. 남조는 정치적 혼란과는 대조적으로 문화와 불교 등이 융성하여 육조 문화라 불리는 귀족 문화가 번영하여 도연명, 왕희지 등이 활약했다.
화북에서는 선비족 탁발부가 건국한 북위(北魏)가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북방 유목민의 부족제을 해체하고 귀족제에 의거한 중국적인 국가로 탈피했다.
북위는 육진의 난(六鎭之亂)을 거치면서, 534년에 동위(東魏), 서위(西魏)로 분열하였다. 동위는 550년 북제(北齊)로 정권이 바뀌고, 서위는 556년에 북주(北周)가 대신했다. 577년 북주는 북제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 후 581년 수나라의 양견이 북주의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오른다. 589년 수나라는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나라를 멸망시켜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화북의 북위, 동위, 서위, 북제, 북주의 5개 왕조를 가리켜 북조(北朝)라고 불렀고, 여기에 수나라도 합쳐야 한다는 설도 있다. 이연수(李延壽)의 북사(北史)에는 수나라를 북조에 넣기도 하였다.
漢나라
한(漢, 기원전 206년 ~ 220년)은 진 이후의 중국의 통일 왕조로써 후에 삼국으로 갈라졌다(220년 ~ 280년). 한 왕조는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서 건국되었다. 한나라는 섭정이었던 왕망이 세운 신에 의해 잠시 맥이 끊겼었다. 이 시기에 의해 한나라는 서한(기원전 206년 ~ 9년)과 동한(25년 ~ 220년)으로 나뉜다. 약 400년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에 중국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한족 역시 이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三国
삼국 시대(三國時代)는 후한이 몰락하기 시작했던 2세기 말부터 위, 촉, 오가 세워져 서로 다투다가 서진이 중국을 통일하는 3세기 후반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엄격하게는 위가 세워진 220년부터 오가 진에게 멸망한 280년까지를 삼국시대로 보나, 많은 사람들은 황건의 난을 삼국시대의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의 다른 국가들과 이름을 구별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위를 조위, 촉을 촉한, 오를 동오라고 부르곤 한다.
[魏] [역사] 중국 삼국 시대, 북부를 차지했던 왕조(220~265). 조조가 화북을 통일하고 죽은 후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후한의 마지막 임금인 헌제(獻帝)의 자리를 빼앗아 220년에 세운 나라이다.
蜀
[蜀] [역사] 중국 삼국 시대의 세 나라 중 하나. 유비(劉備)가 221년에 쓰촨(西川)에 세운 나라로 263년 위나라에 망하였다.
吴
越
월 [月,越,鉞]
吳나라
1.춘추시대[春秋時代] 오나라의 영토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일대를 말함
2.삼국시대 220-280년 손씨 오나라
春秋时代:越吴楚
三国时代:魏蜀吴
'地理 > 中国历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오진/우전(中國浙江省烏鎭) IT 대회 모습/2015.12.16日 (0) | 2015.12.17 |
---|---|
明十三陵 (0) | 2015.10.04 |
隋朝年表와 广通渠에 대하여 (0) | 2014.05.16 |
中国历史年代表 (0) | 2014.05.16 |
女真族 (0) | 2014.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