语言/彦文资料

寧의 발음

송화강 2014. 2. 13. 08:19

 

 

寧=영,령,녕.엿장수 맘대로인가?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hhw000001979&q=%E5%AF%A7%E6%97%A5

 

<한국식 한자>곡식이 익은 .

영세

 

<한국식 한자>조선 말엽, 평안 북도 이칭.

영찰

 

상기 두개의 단어는 일반명사의 경우이며 이것은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관련표현

麗州에 가면 세종대왕 영릉이 있다.

신기한것은 영릉이 한글로 2기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기하게도 영릉/영릉 그러나

하나는 세종대왕/효종왕릉 각기 다른데 한자로 구차스럽게 이제 이 한글 종씨를

구별해준다고 생각해서인지

영릉(英陵)/영릉(寧陵) 이렇게 해 놓았지만 사실 寧陵은 그 발음이 녕릉이다.

 

무슨 두음법칙이 이곳에 필요한것인가.

寧 이 글자의 원음이 "녕"이다

중국어에서 Ning로 발음되는 "닝"자 이므로 결코 영릉이 아니다.

 

英(Ying) 寧(Ning)과는 완전히 그 발음 계열이 다른것이다.

 

문화재관리공단에서는 모든 참배객의 고개를 갸웃둥하게 하는 이 어색한 표기를 바꾸어 준다면 좋을 텐데

 

"고유명사"의 표기에서 두음법칙 적용은 재고 할

필요가/즉 이름인데.........이름인데......

 

영릉(寧陵) 

 

관련표현

안녕 [安寧]
친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인사 하는 .
정녕 [丁寧]
거짓 없이 진실하게. 또는 틀림없이 .
효령 대군 [孝寧大君]
[인명] 조선 태종 둘째 아들(1396~1486). 이름 (), 초명 (), 자는 숙(), 연강(蓮)이다. 불교 독실하여 많은 불사를 주관했으며원각경()》 국역()하여 간행하였다. 문장에도 능하였다.
휴녕 [休寧]
아무 걱정없이 편안히 여겨서 마음 놓음.
양녕 대군 [讓寧大君]
[인명] 조선 태종 장남(1394~1462). 이름 (), 자는 후백()이다. 세자 책봉되었으나 학문 정진하지 않고 무절제한 생활 하여 결국 폐위되었다. 이후에는 풍류 즐기며 여생 보냈다. 글씨 뛰어났다고 한다.
영돈령부사 [領敦寧府事]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으뜸 벼슬 영사. 정일품()으로 임금 장인에게 맡겼다.
판돈령부사 [判敦寧府事]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종일품 벼슬.
조녕 [粗寧]
별다른 없이 대체로 편안함. 흔히 윗사람에게 자기 안부 전하는 편지 쓴다.
집녕 [輯寧]
[음악] 종묘 제례 쓰이는 악곡 하나. 조종() 문덕() 송축하는 보태평() 열한 다섯 번째 으로, 제향 초헌() 등가()에서 연주한다.
동지돈령부사 [同知敦寧府事]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종이품 벼슬.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경상남도 창녕 창녕 교상동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 원래 창녕 창녕 화왕산() 기슭 있던 1924 현재 위치 옮긴 으로, 비문 해서체이다. 국보 33호이다.
강녕 [江寧]
중국 명나라 (). 태조 도읍지 정한 으로, 난징()으로 이름 바꾸었다. 지금 () 성도()이다.
충녕 대군 [忠寧大君]
[인명] 세종() 즉위하기 사용했던 군호().

 

 

 

동돈령
[同敦寧] ..........보자! 돈령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속한 종이품 벼슬.
동녕부 [東寧府]........보자! 동녕,,,,,,왜 돈자 뒤에는 령이되고 동자 뒤에는 녕이 되는가?

 

"敦寧:돈령"

"東寧:동녕"  이거 이래도 되는 것인가!

 

 

오히려 돈령보다는 같은 "ㄴ"계열 발음인 돈령=>돈녕이 맞은데.........참나

 
[역사] 고려 시대, 1270(원종 11) 중국 원나라 자비 이북 원의 영토 편입하고 이를 다스리기 위해 서경(西) 설치하였던 통치 기관. 1275(충렬왕 1) 동녕로관부 승격시켰다가 1290(충렬왕 16) 폐지하고 지역 고려 반환하였다.
귀녕 [歸寧]
시집 친정 가서 어버이 .
강녕전 [康寧殿]
경복궁에서, 왕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건물. 1395(태조 4) 창건되었으며, 1553(명종 8) 1592(선조 25), 차례 소실되었고, 이후 1865(고종 2) 경복궁 중건 재건하였다. 1920년까지 제자리 있었으나,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殿) 다시 짓는다는 구실 일본인들 의해 헐리게 되었다. 현재 모습 1995 복원된 이다.
무령왕 [武寧王]
[인명] 백제 25 (?~523, 재위 501~523). 휘는 사마(), (), 륭()이며, 24 동성왕() 둘째 아들이다. 고구려, 말갈족 대치하여 방비 튼튼히 하고, 중국 ()나라 사신 보내어 문화 받아들였다. 1971년에 무령왕 왕비 함께 묻힌 능이 충남 공주에서 발견되었다.
무령왕릉 [武寧王陵]
충청남도 공주 금성동 있는, 백제 무령왕 왕비 . 1971 발굴되었다. 묘실 연꽃무늬 또는 글자 새긴 벽돌 만들어져 있는데, 묘실에서 왕비 왕관, 금팔찌, 금귀고리, 묘지석, 도자기, 청동 제품, 철기 88 2,000 유물 발굴되었다.
돈령부 [敦寧府]
[역사] 조선 시대, 왕실 가까운 친척 위한 사무 맡아보던 관청. 1414(태종 14) 설치하였다.
영돈령[領敦寧]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으뜸 벼슬 영사 이르던 . 정일품()으로 임금 장인에게 맡겼다.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정이품 벼슬. 왕실 친척 맡아보았다.
창녕 순수비[昌寧巡狩碑]
경상남도 창녕 창녕 교상동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 국보 33호이다.
회령[會寧]
함경북도 북부 있는 . 주요 농산물 옥수수, , , 채소, 잎담배 따위이며 밖에 석탄, 석회석 생산 많다. 공업 탄광, 기계, 직물, 제지, 제약, 제당, 도자기 제조가 성하다. 1991 승격되었다.
개령 민란[開寧民亂]
[역사] 조선 시대, 1862(철종 13) 경상도 개령에서 일어난 민란. 개령 현감 후근() 탐욕 폭정 항거하여 () 등이 이러 민폐 없애라는 격문 돌리며 백성 선동한 계기 수천 명이 봉기하였다. 반란 주모자 다섯 명은 효수()되었다.
안녕질서[安寧秩序]
국민 생명 재산 안전하고 사회 모든 질서 바로잡힌 상태.
지돈령[知敦寧]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정이품 벼슬. 왕실 친척 맡아보았다.
요령성[遼寧省]
중국 만주 남동부 있는 . 중앙부 오허 () 종단하고, 남쪽 하이(), 황해() 접해 있다. 석탄 지하자원 풍부하며 중화학 공업 발달하였다. 성도() 선양()이다. ‘요령 중국어Liaoning[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이다.
보령[保寧]
충청남도 서남부 서해안 있는 . 농산, 축산, 임산, 수산물 많이 . 명승지 도화, 대천 해수욕장 따위 있다. 1995 1 행정 구역 개편 대천시 보령군 합쳐져서 신설되었다. 면적 567.94제곱킬로미터이다.
승녕부[承寧府]
[역사] 조선 시대, 상왕() 옥책(), 금보() 맡아보게 하기 위하여 덕수궁 임시 관아. 1400(정종 2) 정조에게 왕위 물려준 태조 위하여 설치하였으며, 이후 1907(융희 1) 고종 위하여 다시 두었다가 4 뒤인 1910년에 없앴다.
판돈령[判敦寧]
[역사] 조선 시대, 돈령부(@) 종일품 벼슬.
수복강녕[壽福康寧]
오래 살아 누리, 건강하여 마음 편안함.
의령[宜寧]
경상남도 . 지형 높고 낮은 으로 되어 있으며, 특산물 한지() 생산된다. 축산업 임업 발달하였고 수박, , 한우 따위 산지 유명하다. 명승지 보천사지 삼층 석탑, 붕사, 충익사 따위 있다. 면적 482.91제곱킬로미터이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 석탑[昌寧述亭里東三層石塔]
[역사] 경상남도 창녕 창녕() 술정리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석탑. 화강석으로 만든 삼층 석탑으로, 높이 5.75미터이다. 국보 34호이다.
돈령[敦寧]
[역사] 조선 시대, 왕실 친척. 동성() 9 이내, 이성() 6 이내, 왕비 동성 8 이내, 이성 5 이내, 세자빈 동성 6 이내, 이성 3 이내 드는 사람들 말한다.
청녕지곡[淸寧之曲]
[음악] 고려 시대, 태묘() 초헌례() 연주하던 제례악 하나.
청녕장[淸寧章]
[음악] 고려 시대, 태묘() 초헌례() 연주하던 제례악 하나.
소손녕[蕭遜寧]
[인명] 거란 장군(?~?). 993(성종 12) 거란군의 총사령관 되어 80 대군 이끌고 고려 서북 국경으로 침입했다. 이에 고려에서는 서희() 자청하여 홀로 거란 군영 왔는데 이때 서희 기개 굴복하여 철군하였다.
낭세령[郎世寧]
[인명] 이탈리아 화가선교사(1688~1766). 전도 위하여 중국 가서 중국 회화 건축 기법 배워 유럽 전하였다. ‘카스틸리오네2(Castiglione, Giuseppe)’ 중국어 이름이다.
창녕[昌寧]
경상남도 북쪽 있는 . , 보리 주로 생산하고 도시 가까워 채소 속성 재배 활발하다. 양파 땅콩 유명하고 농공 단지 공업 단지 있다. 명승지 , 화왕산성 따위 있다. 면적 532.95제곱킬로미터이다.
강녕[康寧]
주로 나이 지긋한 윗사람 건강하고 마음 평안함.
동녕로총관부[東寧路摠管府]
[역사] 고려 시대, 1275(충렬왕 1) 중국 원나라 동녕부() 승격시켜 고친 이름. 1290(충렬왕 16) 없앴다.
부령[富寧]
함경북도 있는 . 명승고적으로 백사봉(), 고무 산성(), 쌍포() 따위 유명하다. 군청 소재지 부령읍이다. 면적 790제곱킬로미터이다.
대령강[大寧江]
평안북도 삭주 남서(西)에서 발원하여 박천(), 태천(), 영변() 등지 거쳐 황해 흘러드는 . 길이 150킬로미터이다.
돈령원[敦寧院]
[역사] 대한 제국, 왕의 친척 외척 대한 보첩() 관장한 관청. 1900(광무 4) 귀족원() 개칭한 이다.
재령강[載寧江]
황해도 북서부 흐르는 . 해주 북쪽 수양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대동강으로 흘러 든다. 길이 129.2킬로미터이다.
돈령사[敦寧司]
[역사] 대한 제국, 왕실 가까운 친척 위한 사무 맡아보던 관청. 1905(광무 9) 돈령원(@) 개칭한 이다.
재령평야[載寧平野]
황해도 북서부, 재령강 유역 있는 평야. 비롯하여 , , , 면화, 사과, 등이 재배된다.
회령 탄광선[會寧炭鑛線]
함경북도 회령에서 계림() 사이 잇는 단선 철도. 계림 탄광 개발 위해 부설된 시설 길이 11.7킬로미터이다.
창녕 석빙고[昌寧石氷庫]
[역사] 경상남도 창녕 창녕() 송현() 있는 조선 시대 얼음 창고. 1742(영조 18)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영녕사[永寧寺]
[역사] 중국 남북조 시대, 뤄양() 있었던 . 북위() 멸망할 소실되었다.
만녕전[萬寧殿]
[역사] 조선 시대, 강화도 설치하여 영조() 영정() 모셔 두었던 .
재령 철산[載寧鐵山]
[광업] 황해도 재령 재령 양산() 있는 철광산(). 갈철석 적철석 .
제녕[濟寧]
집녕[集寧]
지돈령원사[知敦寧院事]
[역사] 조선 시대, 돈령원(@) 칙임 벼슬.
회령 개시[會寧開市]
[역사] 조선 시대, 1638(인조 16) 이후 회령에서 중국 청나라와의 사이 행해지던 무역.
시닝[西寧]
중국 칭하이 () 성도(). 고원() 북동부 교통 요지, 기계 공업 화학 공업 발달하였다.
영녕전[永寧殿]
[역사] 조선 시대, 종묘() 안에 따로 만든 사당.
고령가야[古寧伽倻]
[역사] 가야() 가운데 지금 경상북도 상주군 위치하였던 으로 여겨지는 나라.
함녕지곡[咸寧之曲]
[음악] <영산회상> 다섯 번째 곡인 삼현() 도드리 아취 있게 부르는 이름.
동녕부 총관[東寧府摠管]
[역사] 고려 시대, 동녕부 관할하던 중국 원나라 관직.
함녕절[咸寧節]
[역사] 고려 숙종, 예종, 원종 , 임금 생일 기념하던 .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역사] ‘영돈령부사(領@)’ 원래 .
필녕[弼寧]
에서 도와 편하게 .
무령지곡[武寧之曲]
[음악] ‘대취타()’ 달리 이르는 .
무녕지곡[武寧之曲]
[음악] ‘대취타()’ 달리 이르는 .
창녕절[昌寧節]
[역사] 고려 숙종 제정한 태자 탄생 기념일.
돈녕[敦寧]
[역사] ‘돈령(@)’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