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乐/音乐

野玫瑰花

송화강 2012. 12. 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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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南趣味房2013.9.6葛藤花

 

 

 

 

 

 

 

 

 

장사익 찔레꽃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 / 이연실 작사, 박태준 작곡, 이연실노래

 

 


엄마 일 가는 길에 햐얀 찔레꽃
찔레꽃 햐얀 잎은 맛도 좋지
배 고픈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햐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햐얀 엄마꿈
산등성이 넘어로 흔들리는 꿈

엄마 일 가는 길에 햐얀 찔레꽃


찔레꽃 햐얀 잎은 맛도 좋지
배 고픈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

 

 

 이연실이 부른 찔레꽃의

 

원곡은 이태선 선생님이 1920년대 쓴 동시 (童詩)에 박태준 선생님이 곡을 붙인 '가을밤'이다,(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그런데 방정환 선생님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해서 수 많은 동요를 작사하다가 해방 후 월북한 윤복진(1907-1991) 선생 님이 지은 '기러기'란 동시가 이 곡에 붙여서 '기러기'라는 이름으로 도 알려지게 되었다.(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뿐만 아니라,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선생님이 1930년에 '신소년' 잡지에 발표했던 '찔레꽃'이란 동시를 가수겸 작사가인 이연실이 1972년에 위와 같이 고친 가사로 불렀던 것이다.

 

 이연실이 부른 '찔레꽃'은 가을을 소재로 한 '가을밤'과 '기러기'와는 달리 봄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공통점은 3가지 가사에 모두 "엄마"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듣기만 해도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하는 까닭은 그 속에 너무나도 가난했던 그 시절과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나문희가 주연을 맡아 명연기를 보여준 영화 '하모니'에서 사형수인 그녀가 지휘를 맡은 여자 교도소 합창단이 부르던 이 노래의 감동과 마지막에 형장 으로 향하는 뜻밖의 반전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고 보리를 수확하기 전, 먹거리가 없던 아이들은 동네 산으로 올라가 놀다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막 움 솟은 찔레 순을 따먹으며 부르던 옛 동요이다.

 끼니도 거를 만큼 가난했던 옛날에 찔레 순으로 시장기를 달래며, 힘겹게 보릿 고개를 넘겨야 했던 날들의 가난한 애상이 아리게 다가오는 노래이다.


  배고픔의 현실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딸 내 집도 안 간다>는 속담에도 고스란히 깃들여 있다.
또한 찔레꽃이 필 즈음 드는 가뭄을 <찔레꽃 가뭄>이라 하여 농사의 지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쌀가루와 찔레꽃을 켜켜로 넣고 찌면 떡이 익은 자리에 꽃은 사라지고, 고운 빛깔과 향기가 나는 달콤한 찔레꽃 떡이 된다. 이처럼 서민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찔레꽃은 우리나라의 들장미라 할 수 있다.

 

줄기가 약해 기대어 크는 덩굴식물이지만 볕이 잘 드는 곳이면 꿋꿋이 뿌리 내린다. 그러나 소박한 모습에 사랑 받는 찔레꽃도 담장에 올리면 상을 당한다고 하여 생 울타리로는 키우지 않았다.


  5월이면 새로 자라난 가지 끝에 많은 꽃이 흰색이나 연분홍색으로 피어나는데, 맑고 수수한 다섯 장의 꽃잎이 치마폭을 펼치듯 만개했을 때는 한 아름 기쁨을 받아 든 느낌이 좋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여린 몸짓은 보는 이도 덩달아 그리움에 젖어 들게 한다. 이제 세상은 달라져 봄 지나면 피던 찔레 꽃은 1년 내내 피는 꽃이 되었다. 그만큼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것일까?

 

 

'찔레꽃'을 부른 이연실은

 1950년 8월 6일생으로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나 군산여고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였으며, 새색시 시집가네'로 데뷔를 하였다.

당시로서는 생소하다면 생소하다고 할 수있는 여자 통키타 가수로서 박인희 등과 함께 당시의 통키타 음악을 이끌어가던 여자가수들의 선두 주자였다.

 

그의 음악은 서정적이면서도 호소력 넘치는 가창력과 그의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와 향토성 짙은 가사로서 많은 음악 펜들을 매료 시켰다. '찔레꽃' 역시 어머니와의 추억을 노래하면 향토색 짙은 추억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새색시 시집가네'는 더욱 향토적인 요소가 물씬피어나는 음악이기도 하다.


이연실은 우리와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가수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이연실의 근황은 인터넷 어느 구석을 뒤져도 알수가 없어 궁금 한 점이 많다.
1970년대 가요계는 르네상스시대를 열었을때 정말 멋진 가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연실은 찢어질듯 칼칼한 목소리가 뭔가 모를 나름대로 혼을 담아 하소연 하듯 우리들의 마음을 울쩍 할 때는 더욱 울쩍하게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 할 때엔 후련하게 터져 뱉어버리게 해 주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녀의 음색은 미대 출신답게 정말 독특한 색깔로 한 폭의 추상화를 만들어 주는 듯 하다.

'그대'라는 노래를 작곡한 '검은나비'와 '호랑나비'에서 피아노와 키보드를 쳤든 김영균씨와 결혼을 하여 살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고, 어떠한 언론과도 접촉을 끊고 베일속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안개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어 그 의 음악을 좋아 하는 팬들에게는 몹씨 궁금 할 뿐이다.

 

이연실은 1950년 전북 군산에서 4남2녀중 차녀로 태어난다.

 

군산대학교 교수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가수 이연실은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다.

 

1970년 <가수 팔도대항전>이란 가요제 프로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하여 입선

          홍대 미대에 재학중이던 이연실은 아르바이트로

          소공동 조선호텔뒤 라이브 클럽인 <포시즌>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배호의 "누가울어" "안녕"

          박경희의 "저꽃속에 찬란한 빛이" 그리고 예비군가를 작사한

          60년대 최고의 작사가 전우씨의 눈에 띄여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전우씨는 1978년 간경화로 42세란 짧은 생을 마감한다)

 


1971년 9월 제5회 <MBC 팝콘서트>에서 자작곡 "조용한 여자"로  

           데뷔 리사이틀을 갖고  또한 딕훼밀리의 "또 만나요"를 만든 

           오세은과 조인트 콘서트를 열며 활발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해 11월 데뷔앨범인 <새색시 시집가네>에서

          "새색시 시집가네" "둘이서 걸어요" "비둘기집" "하얀눈길"을 발표한다.

1972년 7월 송창식,윤형주,김세환,어은경과 함께

          국내 최초의 포크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이연실은 "그이 지금 어디에"와 자신이 작사한 "찔레꽃"을 발표한다.

          또한 홍익대 재학시절 음악과 인생을 알기위해

          휴학까지 하고 대구로 내려가 다방 레지생활까지 하던

          열정적이고 당찼던 이연실은 그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위해

          대학생활을 중단하고 홍익대를 자퇴하게 된다.

 


1973년 3월 3집앨범에서 "시악시 마음" "잃어버린 전설" "기다리는 아이" "별리" 발표

          12월 이연실과 최헌의 스플릿 앨범에서 "이밤" "소낙비" "나의 길" 발표

1975년 11월 이연실과 박인희의 스플릿 앨범에서 "한자 두자 일곱치" "먼 나라" 발표

          그해 12월11일 일명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동료가수인 정훈희 이수미 이현과 함께 자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연실은 사안이 경미하다고 하여 훈방조치 된다.

1976년 5월 <고운노래 모음집>에서 "조용한 여자" "이제는"를 발표하며 재기 한다.

1981년 5월 이연실의 최대의 히트곡인 "목로주점"이 담긴 앨범을 발표한다.

1983년 2월 양병집의 "오늘 같은날"과 이태원의 "솔개"를 만든 작곡가 윤명환과

          손을 잡고 10번째 앨범에서  "그이" "문을 닫고" "겨울"등을 발표한다.

1985년 5월 남편인 김영균과 함께 12번째 앨범에서 "잠실 야구장" "어떤 약속" 발표

 


1989년 4월 그녀의 18년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앨범인 13번째 앨범에서 "역" "찔레꽃" "비"등을 발표하고

          "민들레"란 노래를 머리에 둔 14번째 앨범인 <새노래 모음집>등

          결산과 출발을 의미하는 2장의 앨범을 4월에 동시에 발표하게 된다.

          (참고로 14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란 민들레"는

          [겨울공화국]의 민중서정시인이자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양성우씨의 서정시에 이연실이 곡을 만든 것으로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희생된 넋들을 기리는 일종의 진혼곡이다.)

1993년 민주당 임채정의원의 후원회에 전유성,엄용수와 함께 참여한다.

1994년 한돌의 <내나라는 공사중>이란 3번째 독집음반 작업에 동참한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이연실은 가수 활동을 그만 두면서

이후 이연실의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게 되었으며

더욱이 한때 건강마저 좋지 않다는 소문마저 떠돌던 터라

그의 오랜 펜들을 더욱더 궁금하게 그리고 안타갑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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