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정책 |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 단체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꾸준히 한말글 사랑과 한글만 쓰기를 정부와 사회에 촉구해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1967년 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대학생들의 한말글 사랑 운동은 박정희 정부로 하여금 한글전용 정책을 좀더 과감히 그리고 신속히 추진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967년 10월 9일 한글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 공동주최로, 고려대 캠퍼스에서 '한글전용선언대회'를 열고, '대통령과 문교부장관에게 드리는 건의문'을 채택 발송하고, 거리에서 '국민들께 드리는 호소문'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한말글 사랑 운동을 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정보를 미리 입수한 경찰은 고려대 정문에서부터 학생들의 출입을 제한했고, 전단 등 관련 물품을 빼앗았습니다. 이 행사를 취재한 당시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례 없이 크게 보도했고,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 내용을 전문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건의 내용은 두 가지였는데, 그 하나는, 한글전용법에 단서 조항으로 들어 있는 '필요한 경우 당분간 한자를 병기한다.'를 삭제하는 법 개정을 해 줄 것과, 또 다른 하나는, '공식적으로 대통령 이름을 적을 경우엔 꼭 한글로만 적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내용이 실린 신문기사를 지방에서 보고, 대통령의 문화고문인 노산 이은상 씨를 급히 청와대로 들어오라 했고, 이은상 씨는 대통령이 부르는 까닭을 짐작하고 한글전용 운동의 근본 취지를 글로 적어 가지고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 날 저녁 서울 소공동 어느 음식점에서 한글 단체 인사 십여 분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은상 씨는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는데, 저는 그때 학생 대표로서 그 자리에 참석해 이러한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얼마 안 돼, 저는 한글학자 한갑수 씨로부터, 청와대의 요청으로 '한글전용 5개년 계획안'을 작성해 전달했다는 말씀을 들었고, 이어 정부는 1968년 3월 14일 '한글전용 5개년 계획 시안'을 한갑수 씨가 만든 안과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나라 안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문서는 물론 신문 잡지 등 우리의 모든 글자살이에서 한자를 일절 쓰지 못한다는, 아주 강력하고도 획기적인 정부 시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4개 대학 국어운동학생회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동국대)는 즉각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3월 18일자로 발표했고, 주요 언론이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한글전용 시책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해서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때부터 공식 문서에서 이름을 반드시 한글로만 썼으며, 청와대 안에 있는 모든 한자 문패를 한글로 바꾸었고, 광화문 같은 현판을 한글로 직접 쓰고 걸게끔 했습니다. 대통령 아버지 무덤에 있는 묘비명도 한갑수 씨한테 부탁해서 한글로 고쳐 다시 세웠습니다.
육영수 여사 또한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가 1967년 5월부터 열어 온, '고운 이름 자랑하기'란 한말글 이름 짓기 운동의 행사에 해마다 찬조금을 보내어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행사의 결실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선 많은 우리말 한글 이름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1968년 10월 9일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16개 대학의 국어운동학생회 대표들이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꽃 바치는 자리'(연례행사)를 처음 마련하여, '꽃 바치는 글(성명서)'을 낭독, 채택했는데, 그때 대부분의 언론이 이 행사와 성명서 내용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심지어는 늘 우리 학생들 곁을 따라다니며 감시하던 경찰서 형사들도 더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고, 그때까지는 다소 소극적이던 학교 당국도 우리 학생들의 한글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박정희 정부의 이러한 한글정책이 1971년 6월 4일, 11대 국무총리로 김종필(1975. 12. 18.까지 재임) 씨가, 20대 교육부장관으로 민관식(1974. 9. 17.까지 재임) 씨가 취임한 뒤, 두 사람 때문에 크게 후퇴를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 한글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펼친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가 써서 매단, 광화문 한글 현판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가장 강력한 한글 사랑 정책이 구상되고 펼쳐졌던 증거물이자 상징이었는데, 현재 철거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국어운동학생회의 건의로 촉발된-
<박정희 정부의 한글전용 시책 연표>
1967년 10월 9일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세 대학 국어운동학생회가 공동으로,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을 채택하여 전달하고, 한글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전단 10,000장을 만들어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
대통령 님;
저희 국어운동학생회는 제 521돌 한글날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이 건의합니다.
- 건의내용 -
(그 하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10월 9일 법률 제 6호로 제정 공표된 한글전용법 조문에는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서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장 삭제해 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첫째: 많은 수를 위하는 진정한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둘째: 조국 현대화를 앞당겨 완수하기 위해서 셋째: 민족문화 발전과 국가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서 넷째: 극심한 국제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다섯째: 한글전용 정책에 의한 새 민주교육을 받고 자라난 저희 세대는, 한글전용을 생활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 둘) 대통령 직함으로 이름을 쓰실 때는 꼭 한글로만 쓰실 것을 아래와 같은 이유로 건의합니다.
첫째: 더욱 과감한 한글전용법의 제정을 촉진하고, 국민들에게 한글운동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둘째: 국내외적으로 자주 독립 국가의 위신과 배달겨레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1967. 10. 7.
1967년 11월 16일
박 정희 대통령이 국무총리 정 일권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글 전용 연차 계획 수립 지시’
1968년 3월 14일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안 발표’
문교부: 현재의 상용 한자 1,300자를 오는 1969년까지는 700자로 줄이고, 그 후 초・중・고・대학의 순으로 한자를 줄여, 1972년까지는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모두 없앤다.
공보부: 신문 및 각종 간행물의 한자를 1968년까지 2,000자, 1969년까지 1,300자, 1970년까지 700자로 각각 줄이고, 72년에는 한글을 전용토록 할 방침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계법을 제정한다. 총무처: 각종 공문서・인사 기록 카드에 한자를 점차적으로 줄인다. 법원 행정처: 호적, 등기 사항과 소송 기록 등을 점차적으로 한글로 표기한다.
1968년 3월 18일
정부의 단계적 한글전용 5개년 계획 시안에 대한 환영 성명서를 아래 네 대학의 공동 이름으로 발표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1968년 5월 2일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지침(안)’ 국무회의 의결
상용 한자는 1968년도에는 2,000자, 1969년도에는 1,300자로 줄여, 1972년까지 한자를 단계적으로 완전히 없애고, 1973년부터 전면적인 한글 전용을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세부 지침도 발표한다.
① 공문서는 특수한 것은 68년까지 한자 병용을 허용, 69년부터 한글을 전용하고 ② 법령문은 72년도까지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것만 괄호 안에 한자를 덧붙이며 ③ 호적・등기・주민 등록은 70년도부터 한글을 전용하며 ④ 각급 교과서, 정부 간행물 및 일반 정기 간행물은 73년도부터 한글을 전용토록 한다.
그리고, 이 계획 실천을 위하여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설치한다.
1968년 5월 4일
덕수궁에 세종 큰 임금 동상 세움.
1968년 10월 7일
‘박 정희 대통령의 한글 전용 촉진 7개항 선언’
(10월 25일. 대통령, 한글 전용 추진 7개항을 총리와 관계장관에게 지시)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지 520년이 넘도록 한글을 전용하지 않고 주저하는 것은 비주체적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며, 한문을 모르는 많은 국민을 문화로부터 멀리하려는 행위다.
(1) 70년 1월 1일부터 행정․입법․사법의 모든 문서뿐만 아니라, 민원서류도 한글을 전용하며, 국내에서 한자가 든 서류를 접수하지 말 것. (2) 문교부 안에서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두어, 69년 전반기 내에 알기 쉬운 표기 방법과 보급 방법을 연구 발전시킬 것. (3) 한글 타자기의 개량을 서두르고, 말단 기관까지 보급할 수 있도록 할 것. (4) 언론․출판계의 한글전용을 적극 권장할 것. (5) 1948년에 제정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70년 1월 1일부터는 전용토록 할 것.("대한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한자를 병용한다"는 법조문의 단서를 뺀다.) (6) 각급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앨 것. (7) 고전의 한글 번역을 서두를 것.
1968년 10월 9일
‘(전국 17개 대학으로 구성된) 각 대학 국어운동학생회 연합회가 제1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
한글전용 찬반에 관한 기초 여론조사(설문 3개)를 1968년 8월 1일부터 같은 해 9월 30일까지 전국 주요 도시의 학생, 일반인, 공무원 등 총1,6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한글전용 지금 당장 실시 찬성 (56.1%), 3년 이내 실시 찬성 (13.0%) 5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 (9.7%), 6-10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 (5.9%) 1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 (4.0%),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
1968년 11월 5일
‘한글 전용 연구위원회 설치’ (대통령령 제3925호) ‘한글 전용에 관한 총리 훈령’ (제68호)
1968년 12월 11일
광화문 복원 (박정희가 쓴 한글현판 부착)
1968년 12월 24일
‘한글 전용에 관한 국무총리 훈령 제 68호’
정부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1948년 10월 9일에 제정하고, 그의 실천을 위하여 정부공문서 규정 `대통령령 제 2056호`으로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쓰도록 하고 있으나, 이의 실천이 잘되지 않고 있으므로, 다음 사항을 지시하니 한글 사용에 철저를 기하도록 할 것.
(1) 한글의 전용
① 공문서 작성에 있어서 이미 한글만으로 표기하던 것을 더욱 철저 히 시키고, 공문서의 별지나 부록 자료 등 부속 서류도 한글로 쓰도록 한다. ② 한글 전용에 관한 단서에도 정부에서 발행하는 모든 공문서 기타 표 현물(표어, 포스터, 현수막, 아치 및 간판, 정부 간행물, 신문 및 잡지 등 에 게재하는 공고, 광고문 등)을 전부 한글로 쓴다. 다만, 한자가 아니면 뜻의 전달이 어려운 것은 괄호 안에 상용 한자의 범위 안에서 한자를 표 기해도 무방하며, 1970년 1월 1일부터는 완전히 한글로만 표기하도록 한다. ③ 법규문서도 전항에 따른다. (정부공문서 규정 제7조 1항 단서-‘대한 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한자를 병용한다.’ 는 폐지)
(2) 어휘 및 표기 방법
① 문장의 어휘도 우리말로 바르게 쓴다. ② 각급 기관장은 한자로 쓴 기술 및 행정 용어를 우선 자체 내에서 통 일 사용하도록 한다. ③ 각 중앙 행정기관의 장은 분기마다 통일 사용토록 한 술어를 문교부 장관에게 제출하여 문교부 장관은 법률술어, 과학술어, 학술술어 및 행 정술어 등 기능별로 분류 각 관계 부처와 협의하여 전 기관이 같은 어휘 로 표기 방법을 쓰도록 한다.
(3) 서식 준비
① 총무처 장관은 1968년 12월 중으로 서식 정비 계획을 수립하여 정부 에서 제정하는 모든 서식을 한글로 표시할 수 있게 고친다. ② 성명은 한글로 표기하되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한다. ③ 서식 각 난에는 난 번호를 부여하여 전자 처리 기계나 텔레타이프, 텔렉스를 이용 할 수 있게 한다.
(4) 민원 서류
각급 행정 안내실에서는 민원 서류를 대필 작성하여 줄 때 한글로 써 주도록 하고 직접 써서 가져 오는 경우에는 한글로 쓰도록 지도 계몽하 며 1970년 1월 1일부터는 완전 한글로 쓰도록 한다.
(5) 감독 확인
각급 기관장은 소속 직원이 사무처리 과정에서 한글로 전용하도록 지도 감독하고 여러 가지 감사 때에는 이의 실천 상태를 확인하도록 감사 점 검표 착안점을 추가한다.
1969년 1월 15일
‘국무총리 서식 정비 지시’
(제3호)- 등기, 호적사항 한글 전용 기본 방침.
1969년 9월
‘교과과정 개정령 공포’ 한자 교육 근거 삭제, 교과서 한자 삭제
1969년 11월 15일
문교부장관 표창장 수상 (국어운동학생회)
1970년 3월 2일
한자 없는 교과서로 순 한글 교육 실시.
1971년 6월 4일
11대 국무총리 김종필 (1975. 12. 18.까지) 20 대 교육부장관 민관식 (1974. 9. 17.까지) 취임
1972년 2월∼8월
‘한문교육을 위한 교육법 시행령 개정’ 교육용 기초 한자 1,781자 시안 발표 (’72. 6.) 중·고교용 한문교육용 한자 1,800자 발표 (’72. 8. 16.)
1974년 7월 11일
문화교육부 민 관식 장관, ‘교과서 한자 병용 방침` 발표.
1976년 9월 22일
문화교육부, 초등학교 한자 교육 부활하지 않기로 발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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