耶稣/Amazing grace

The Bible with Amazing grace

송화강 2012. 9. 29. 20:55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참 크다고 한다.

우주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지구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먼지보다도 작고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그럼 이 우주라는 공간은 얼마나 크길래 그런 말들이 나오는 걸까?

아니, 우주의 크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우주 공간에 수많은 별들이 존재할텐데, 그럼 가장 큰 별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

태양이 지구보다 엄청나게 크다고 말로는 이야기 하지만, 실제 눈으로 그 크기 차이를 확인해 본 적이 있으신가?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각 별들의 크기를 비교해, 이 지구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알아본다.

화성 등에 비해서는 지구(Earth)가 조금 큰 편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익히 배운대로 말이다.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Sun)을 중심으로 놓고보면 이거야 말로,

지구는 정말 작다고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말이 안 떠 오른다..

지구에 비해 직경이 109배, 부피는 130만배, 질량은 38만배 (33만배라고 하기도 함) 의 위용을 자랑한다.


시리우스(Sirius) 라고 하는 별은 이 우주에서 가장 밝은 별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부른다.  별자리 큰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허블 망원경으로 바라 본 별, 시리우스

허블 망원경으로 바라 본 별, 시리우스

위 그림에서 보이는 아르크투루스(Arcturus) 는 대각성(大角星)이라고 불리며,

별자리 목동자리의 가장 대표적인 별이다.


이젠 이거 갈 수록 태산이다.  시리우스도 크다고 했더니, 베텔제우스(Betelgeuse)는 입이 안 다물어진다.

베텔제우스(Betelgeuse)는 태양(Sun)에 비해 직경으로 약 1000 배의 크기라고 한다.


도대체 별의 크기는 한도 끝도 없는 걸까?  ㅎㅎ

드디어 마지막 별을 소개할 순서가 되었다.

우리 인간이 발견한 이 우주에서 가장 크다고 인정받는 별은 다름아닌 VY Canis Majoris 라고 하는 별이다. 

크기는 태양과 비교해서 자그마치 약 2100 배의 직경을 가진다고 한다.



이거 새해 벽두부터 희망찬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 광대한 우주에 기가 질려버리는 포스팅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 광대한 우주만큼 우리의 미래도 활짝 열려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해피 뉴 이어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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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과학 :: [1회] 만물을 창조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물질·빛·에너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14)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 확보를 위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육체의 활동에 필요한 음식 에너지와 생활에 필요한 비음식 에너지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인류가 생활해 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고 필요한 것이 에너지이므로, 이 에너지는 개인이나 가정, 또는 한 국가의 부의 척도가 되어 왔다.

원시 시대에는 힘(에너지)이 센 사람, 그 다음은 노예를 많이 가진 지주(인력은 곧 에너지이다)가 강자였다. 그리고 많은 산림 자원이나 석탄 자원을 가지고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가 강대국이었으며, 근대에는 석유 자원을 많이 가졌거나 동시에 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공업국이 바로 강대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에너지는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물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에너지는 물질계(우주)의 가장 작은 기본 입자이며, 물질계는 이 에너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생성되었다.



에 너지 → *소립자 → 원자 → 분자 → 물질계(우주) 실제로 빛이 상호 작용해서 전자와 양전자가 생성되며(hv+hv(빛)→전자+양전자) 원자력에서는 원자가 파괴되어 물질이 에너지로 변한다. 우주는 태초에 이러한 에너지에 의해서 소립자, 원자, 분자 그리고 이것들이 혼합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우주에 질서를 주신 것이 창조자의 생각, 곧 말씀이시다.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브리서 1:13)
라고 하신 만물을 붙드시는 힘, 곧 중력에 의해서 물질계에 숨겨져 있던(더 정확하게는 물질이 곧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다시 생성되어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태양의 생성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자.



제 일 처음 우주 공간에는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가 가득차게(전 우주의 70%) 되었으며, 여기에 만물을 붙드시는 힘, 곧 만유인력이 작용함으로써 수소는 한 곳으로 모이게 되었다. 그러자 그 중심부에는 높은 압력(약 4천억 기압)이 생기게 되었으며, 이 압력에 의해서 2천만 도라는 엄청난 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높은 압력과 온도가 수소 기체를 헬륨 기체로 바꾸면서 엄청난 열과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원리가 곧 수소 폭탄의 원리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빛은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 전해지며, 이 빛은 탄소 동화 작용을 통해서
식물에 저장된다.



인 간이나 동물이 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바로 그 속에 저장된 태양 에너지를 취하는 것이며, 또한 그 힘으로써 활동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또 하나의 약한 모습은 태양 에너지를 직접 취하여 육체 활동에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생긴 빛은 하나님의 말씀, 곧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가 바로 능력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의 시작이며, 그 근본이고 또한 우주(물질계)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지고(요1:4) 지상에 오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소립자 : 원자 또는 장(場)을 구성하는 궁극의 단위 물질 즉 양자, 중성자, 전자, 양전자 등.

빛과 생명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활동 에너지(음식, 비음식)는 모두 태양으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된다. 앞서 태양의 생성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불행하게도 태양은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만을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X-광선에서 라디오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파장의 여러 가지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 에너지들은 40%가 가시광선의 형태로, 50%가 적외선, 약 10%가 자외선의 형태로 전달되며 그 외에 생명체에 대단히 치명적인 우주선(프라스마 곧 양자)과 전자파도 동시에 방출한다. 태양의 핵융합 반응에서 생기는 고에너지의 막대한 양전자와 전자가 고속상태에서 충돌·소멸되면서 고에너지의 빛을 만드는데, 이 반응은 가역 반응이다[전자+양전자?hv+hv(빛)]. ① 현재 지구상의 40억 인구가 하루에 소비하는 총 에너지(2.0×1014Kcal per day)는 태양에서 지구에 전달되는 에너지(3.6×1018Kcal per day)의 약 20.000분의 1에 불과하다. 태양으로부터 생성·전달되는 여러 가지 빛 중에서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빛은 고에너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대단히 유독하기 때문에 이러한 빛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지구상에 생명체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지구상의 많은 동식물의 존재는 분명히 이러한 불필요한 빛이 제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욥기 38:8-11)

하나님께서는 욥기에서 언급한 강보를 만들어 지구상의 생명체가 무서운 광선으로부터 보호받게 하셨다. 물리적으로 지구 주위에는 두 종류의 강보(보호막)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째로, 소위 반 알렌 벨트(Van Allen Radiation Belt)라고 하는 방사능 벨트가 있는데, 이것은 지구 중심에 있는 지자기에 의해서 형성된 지장에, 태양으로부터 날아오는 대단히 위험한 고에너지의 전기적인 성질을 가진 입자(우주선 곧 양자, 전자파 등)들이 모두 걸려서 생긴 것이다.

둘째로는, 성층권 위에 있는 놀랍게도 얇은 오존 ② 층이다.

실 제로 20m 두께밖에 되지 않는 너무나도 얇은 오존층에 의해서 99%의 자외선이 차단되며, 이로 인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 놀랄 만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공업의 발달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불소 ③ 화합물 계통의 대기 오염은 오존층을 파괴함으로써 빛마저 오염 ④ 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오존층이 파괴됨으로써 지구표면은 필요 이상의 자외선을 받게 되는데, 이 자외선은 유전인자(DNA)를 이루고 있는 아미노산에 쉽게 흡수된다.

그 결과 유전인자 및 조직들이 파괴되어 피부암을 유발시키고, 식물에서는 탄소동화작용의 원인이 되는 엽록소에 쉽게 흡수되어 이들을 파괴함으로써 식물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한다. 인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강보, 곧 오존층을 파괴하는 어떤 공해도 막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여기에 대한 방안이 없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며, 이것은 어쩌면 성경 말씀을 이루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註) ① 이 가역 반응은 물질과 빛이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물질 -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② 오존 : O 2(산소) → O 3(오존) ③ 냉동제로 쓰이는 프레온 개스 등 ④ 오존층이 파괴됨으로써 불필요한 자외선이 가시광선, 적외선과 함께 지구 표면에 온다.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신비한 우주, 이 거대한 우주는 무한한 것일까 아니면 유한한 것일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철학자, 수학자 그리고 천문학자들은 수없이 많은 하늘의 별들을 보고, 이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이 생성된 우주는 과연 끝이 있는 것일까 혹은 없는 것일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무한한 창조자(하나님) 유한한 우주

우주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하는 논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논쟁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1915), 즉 “물질이 존재하는 시공간은 휘게 되고(curvature of space), 이 휘는 성질 때문에 중력(만유인력)장이 생긴다”는 주장이 끝없는 논쟁에서 우리에게 우주가 유한하다는 해답을 주었다. 동시에 오직 창조자 하나님만이 무한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이론이 발표, 실증되지 않았다면 성경 중의 우주 창조설은 인정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무한한 우주의 창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3)

나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주에는 어떤 대 질서(Super natural law, 초자연 법칙)가 있어서 이것이 우주를 통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으며, 아마도 이것이 바로 중력, 즉 만유 인력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중력은 물질계에서 가장 큰 힘(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브리서 1장 중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는 성경 말씀이 이런 모든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왜냐하면 우주를 붙들고 있는 이 엄청나게 큰 힘을 통제하는 존재(혹은 어떤 초자연 법칙)가 있어야만 그를 통해서 이 우주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150억년이라는 우주의 긴 역사 동안 이 거대한 우주 가운데에 수많은 별들의 끊임없는 운동과, 그러한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는 무엇이며, 누가 이 질서정연한 운동을 관장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은 위 성경 말씀(창조자의 능력의 말씀)에 의해서만이 그 설명이 가능하다.

오늘날 인류의 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여러 형태의 에너지(음식, 석유 등등)인데, 학문적으로 이 에너지는 대략 4가지의 종류, 즉 중력(gravity), 빛(electromagnetic), 강력(strong force), 약력(weak force)으로 분리할 수 있다. 이 에너지 중에서 우주를 붙들고 있는 중력이라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한번 비교해 보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 석유, 석탄의 총 에너지를 합하면 3×10의 19승(3조의 천만배) 킬로 칼로리이다. 중력이라는 새 에너지의 개념은 어떠한 엄청난 밀도의 물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추적한 결과 블랙 홀이라는 초밀도(2×10의 14승g/㎖, 즉 부피 1㎖ 의 무게가 2억톤)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어떤한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일반적 시공 개념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시공간 연속성, 다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은 별개일 수가 없으며 또한 시공간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가 없고 물질이나 빛(힘)의 존재에 의해서만이 규제된다는 사실, 더 나아가서는 유한한 우주의 개념을 입증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과 과학 :: [2회] 과학은 성경을 기초로 한 것이다

 



저 는 미국에서 1978년 구원을 받고 한국에 올아오게 되었습니다. 과학하는 사람이 성경을 알고 구원을 받았다 하기 때문에 자꾸 이야기를 하게 되는군요. 아마 성경을 공부하는 데는 과학 하는 사람이 가장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왜냐하면 과학 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라든지 논리성에 맞지 않으면 믿질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종교가 존재한다 하여, 까만 것을 보고 흰 것이라고 하며 믿으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과학 하는 사람은 결코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히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만 일 성경이 그렇게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면, 저는 아마 성경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구원 받고 난 후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고 나서 성경을 더 알게 되었고 또 성경 속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과학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지구상에 인류가 태어난 것에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가령, 이 우주가 유한한거냐 혹은 무한한거냐, 또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등, 이런 많은 질문을 하게 되고 또 받게 됩니다.

성경은 무엇인가

그래서 저는 우선 성경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함께 알아봤으면 합니다. 성경은 인류의 미래사를 기록한 것인데, 이 인류의 미래사에 대해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모든 과거의 사건을 연대별로 기록한 것이 역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로, 앞으로 올 인류의 미래사를 연대 없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이해하는 데는 굉장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만큼 정확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과거의 역사는,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이미 기록된 역사는 얼마만큼 정확한 기록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과, 성경에서 기록된 미래서가 도대체 얼마나 정확한 건지 한 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가 신문에 스크랩을 하나 해 놓은 게 있는데 82년 5월 17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 보면 인간이 기록한 역사가 부정확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어떤 사실을 보았을 때 그 사실을 얼마나 정확히 보고 있는 것일까? 이에 얽힌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엘리자베스 왕조 때의 모험 항해가이며 담배의 전래자로 알려져 있는 월터 로리경은, 그 유서로 세계사를 남겨 놓았지만 제 1권 뿐, 다음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이 전한다. 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살아지기 전, 런던탑 옥중에서 제 2권을 집필하고 있던 어느날, 바로 창 밑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그 싸움 장소에 있던 몇 사람을 만나 내용을 물어보니, 모두 저마다 다르지 않은가! 그는 여기서 생각했다. 바로 자기 눈으로본 사건이 저마다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지나간 옛날 일들을 어떻게 알고 있다고 할 것인가. 그는 절망한 나머지, 써 놓은 모든 원고 뭉치를 불 속에 집어 넣어 모두 태워 버렸다고 한다.

이 사람이 세계사를 두 권을 썼는데, 이 사건을 보고 1권만 남겨 놓고 2권은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타임지에 한 때 논설을 썼던 월터 리프만이라는 사람이 쓴 퍼블릭 오피니언, 즉 대중의 의견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사실을 기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실험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심리학회 회장에 돌연 낯선 남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쫓기듯 뛰어 들어왔다. 뒤따라 또 한 명이 손에 권총을 들고 쫓아 들어와, 둘 사이에 일대 격투가 벌어졌다. 권총이 난사되고 서로 얽혀 싸워 뒹굴던 끝에 두 사나이가 회의장 밖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벌어진 시간은 불과 20초. 물론 장내는 모두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지만 실은 주최측에서 꾸민 연극이었다. 곧 회의 참석자 일동에게 사건을 본 대로 기록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대답자 40명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이 틀린 율이 엄청났다. 사실과의 차이 20퍼센트 이하가 단 한 명, 25~40퍼센트가 14명, 40~50퍼센트가 12명, 나머지 14명은 그 이상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사실과는 달리 내용을 날조한 것이 40명 중 34명이나 되었다.”

여기는 소위 학자들이 모인 심리학회 회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꾸몄습니다. 어떤 두 사람에게 격투를 시켜서 이를 목격했던 학자들에게 그 결과를 그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건 직후입니다. 그런데 40명 중에서 34명이 날조를 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있다고 하는 학자들이, 바로 그 전에 쓴 사건의 85퍼센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입으로 전해지고, 또 적당히 기록된 인류의 역사란 얼마만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반 면에 이 성경은 연대 없이 기록된 인류의 미래사라고 제가 정의를 내렸습니다. 사실 2천 년, 3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는, 현대 과학만이 해답을 줄 수 있는 예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사실 그 자체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미래사라는 것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 3장 7절 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중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먼저 선지자에게 자기가 하실 일을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그 사건이 일어나도록 되 있습니다. 그런데 연대를 함께 기록했으면 쉽게 이해가 될 텐데 연대 없이 기록을 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이 듭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고 그 성경이 어떻게 씌어졌는가? 흔히 사람들은 성경은 결국 사람이 쓰지 않았느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사람이 썼습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몇 가지 찾아 보고 과학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여기에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고, 또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4장 16절 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성경은 다 짝이 있고, 또 여호와의 입이 이것을 명령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을 모으셨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7장 19절에 보면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성경이 무엇이고 성경이 어떻게 씌어졌는가 하는 것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중에 해답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정의

그 다음으로 많이 질문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많일 계시다면 하나님과 우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에 많은 질문과 회의를 갖게 됩니다. 출애굽기 3장 13절부터 보면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사실 모세도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몰랐던가 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 3:13-15)

여기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 과학적인 얘기를 함께 곁들여서 하겠는데 “스스로 있는 자니라” 는 말을, 영어로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나는 나”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는 현재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제를 모두 현재를 쓰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주란 무엇인가? 사실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주가 무엇인가 질문해도 얼른 대답을 못합니다. 요즘 과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곳'을 우주라고 정의합니다.

그 래서 한자로 ‘우(宇)'와 ‘주(宙)'는 시간과 공간이란 뜻입니다.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우주의 역사는 ‘대폭발'에서 시작하여 ‘블랙홀'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곳을 우주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러면 시간이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 똑같습니다. 한 인간에게 보통 주어진 시간은, 잘 살면 70~80년, 그리고 누구에게나 24시간이란 시간이 매일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제한된 생활 속에서 남과 경쟁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인간의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시간은 무엇이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 시간이 참 묘한 것은, 시간을 일차원으로서 하나의 선으로 그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대칭성을 가지고 있는데, 비대칭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가 절대 대칭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약점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 필름은 거꾸로 돌릴 수 있어도 우리 삶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하나님과의 차이점입니다.

성 경에서 하나님은 “I am that I am" 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의도 역시 전부 현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데, 이 현재라고 하는 시간의 개념은 정확하게 T = 0 라고 합니다. 현재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가는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뿐입니다. T = 0 란 말은 시간이 없다는 말로서 정지의 개념입니다.

이것은 거꾸로 얘기하면, 모든 변화가 정지된 불변의 개념입니다. 불변이란 말은 시간이 정지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T = 0 의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있으나, 하나님에게는 언제나 현재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현재입니다.



그 것은 즉,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갈 수 있기 때문에 예언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과거를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시간을 일방통행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죄를 지어도 과거를 잊어버리는 편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미래도, 현재도, 과거도 전부 현재의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를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 이어 오는 모든 역사까지 이 성경에 미리 다 기록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하나님이 다른 점은, 인간은 시간의 구속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는 점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곳을 우주라고 정의를 했었는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이야기한, 우주가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에 대한 해답이 이미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구원을 받기 전가지만 해도 도대체 우주가 유한한거냐 무한한거냐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 나서, 우주는 유한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만 무한한 것이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유한해야 됩니다. 무한한 하나님이 계시고 무한한 우주가 존재한다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런데 뉴튼 시대까지만 해도, 우주가 무한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뉴튼만 해도 절대 시간, 공간 개념을 도입했는데 아인슈타인에 와서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우주가 유한하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과학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가 더 쉬워졌고, 지금은 창조주의 존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유한한 우주에 무한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정연한 논리로 말씀 드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했으며, 하나님에게는 모든 시간이 현재의 개념으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영존하시고, 모든 우주와 함께 그 안에 계신 것입니다.

제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세 가지 놀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세기 1장에 보면 물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또 히브리서를 보면 만유인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베드로후서에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나옵니다. 저는 이 세 가지를 읽고 나서 굉장히 놀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과학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거기에 다 내포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또 상대성 이론이나 원자탄에 대한 모든 것이 그 몇 마디에 다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성경을 보고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주의 중심에 계신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그 속에서, 하나님은 무한하고 우주는 유한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가 령 유한한 물체가 여기 있다고 합시다. 이 유한한 물체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가장자리가 있어야 되고, 하나는 무게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우주도 이만큼 크다고 하면 가장자리가 존재해야 되고, 또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무게 중심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 래서 천문학 하는 사람들이 우주의 중심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우주의 중심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찾아도 우주의 중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주에다가 좌표를 그려놓고, 여기가 무게 중심이다 할 수 있는 중심이 존재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아마 그 중심을 향해 모든 것이 부딪혀서 박살이 나고 말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고민하는 천문학자에게 이 성경을 보여드렸습니다. 에베소서 4장 6절에 보면 거기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보여 주면서 “당신들이 찾고 있는 우주의 중심엔 누가 계시겠는가? 곧 우주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또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며, 결국은 이 우주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 라고 했다. 하나님은 전 우주 공간에 충만하게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에겐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성경 여러 곳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에서 “위” 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위를 전부 합치면 가장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흔히 일반 물리에서 말할 수 있는 우주의 중앙에 하나님이 계시고, 우주의 가장자리에도 계십니다. 그래서 천문학 하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찾던 모든 해답이 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붙들고 있는 힘이 도대체 뭐냐 하는 것입니다.

만유를 붙드신 능력의 하나님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3)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만물을 붙드는 힘을 만유인력이라고 정의를 하는데 이 성경 속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그 힘이 어떤 것인지? 힘의 에너지는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강력', ‘빛', ‘약력', ‘중력'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크기를 비교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만일 이 강력을 1이라고 한다면 빛은 , 약력은 , 중력은 입니다. 이 강력이라는 힘을 하나로 친다면 빛은 그것의 1/100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약력은 백만에 천만을 곱한 것 분의 일, 그 다음에 중력이라고 하는 것은 백만을 여섯 번 곱하고 거기다 또 천 번을 더 곱한 것 분의 일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만물을 붙들고 있는 힘은 바로 이 중력이라는 것입니다. 두 물체가 있을 때, 그 두 물체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작용하는 힘이 하도 작아서 이걸 아무도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빛은 눈으로 보면 굉장히 밝습니다. 기계를 이용해서 빛의 밝기는 얼마든지 측정이 가능합니다. 보통, 빛에 비해서 중력의 크기는 백만을 여섯 번 곱한 것 분의 일보다 더 작습니다. 이 아주 작은 힘, 중력이라는 것에 의해서 우주가 붙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중력이 어떻게 우주를 붙들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것을 물리학에서는 만유인력이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능력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위의 세 가지 힘은 전부 +, - 힘인데 비해, 중력만은 전부 +, +, +입니다. 전부 합산이 가능한 힘입니다. 위의 세 가지 힘은 +, - 로 되어 있으니까 거리가 멀어지면 없어지고 말지만, 중력만은 아무리 작은 힘이지만 갈수록 더해지는 힘입니다. 소위 에디셔널 포스(Additional Force)라고 해서, 더해지는 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힘이지만 합쳐지기 때문에, 합치면 엄청나게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미세한 말씀이라고 시편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느낄까 말까 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까 말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다 대고 아무리 악을 쓰고 울부짖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저도 옛날에 교회를 다닐 때 소리쳐 울면서 기도도 해 보았는데, 성경을 읽다보니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늦게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이 중력같이 아주 미세한 음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떠들고 울고불고 하면 들리질 않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경을 조용히 상고했을 때 하나님을 영접할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울고 떠들어 봐야 하나님 음성이 오히려 더 멀어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경을 읽어야만 그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 그 미세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접해지는 게 아니냐 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중력이라고 하는 것은 왜 하필이면 성경에서 이렇게, 정의를 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면 창세기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가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그 다음, 도대체 삼위일체가 무엇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데 셋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뜻인데,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참 납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우리의 학문에는 대상이 있는데, 그 대상을 우리 가까이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우리에게 느낄 수 없는 그런 대상 같으면 연구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가끔 사람들이 성경이 뭐냐고 질문을 하면, 저는 성경 전체를 대변하는 말이 바로 이 창세기 1장 1절부터 5절까지라고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땅이라고 하는 것을 저는 저 자신에 비유를 해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것은 우리의 사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 사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빛을 발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후에 빛과 어두움을 가르는 마지막에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창세기 1장 1절에서 5절까지가 아니겠느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왜 성경 1장 맨 앞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신다 하셨을까?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 때 ‘물이란 무엇이며, 또 물의 성질은 무엇인가?' 등 물에 대한 연구를 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 고등학교 책을 보면 아직도 물의 성질은 기현상이라고 한 데가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물의 신비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물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고 있으며, 매일 듣는 일기예보는 바로 물 때문에,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 때문에 생기는 예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체가 75퍼센트는 물로 구성되어 있고, 지구의 75퍼센트는 바닷물로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성경의 첫 장에 이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 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여기 창세기를 보니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물이 얼마나 신비하기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신다고 하셨겠습니까?

이 물은 가운데 산소가 있으며 수소를 양쪽에 들고 ㄱ자 형으로 생겼습니다. 삼위일체를 물의 형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은 세 가지의 집합형태, 즉 세 가지 상이 있는데,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있고, 고체 상태의 얼음이나 눈이 있으며, 액체 상태의 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형태가, 물이란 속성이나 구조가 하나도 변칠 않습니다. 그 형태만, 즉 집합성만 다른 것 뿐입니다. 그래서 그 물 중에서도 액체로서의 물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의 각기 다른 형태인 이 세 가지가 다 자기의 고유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물이라는 속성은 다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삼위일체를 생각할 때 물을 놓고 비유합니다. 하나의 물인데 세 가지 다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세 가지의 역할이 다 다릅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의 하나님이셨고,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에게 오셨으며,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세 분이 한 분이신데 역할만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 보면, “신들” 이라고 정의를 했고 복수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시대에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역사의 내용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 구약 시대, 신약 시대, 지금 성령의 시대 이렇게 역할이 서로 다른 것 뿐이지 결국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결국은 물이 수증기로서의 역할, 물로서의 역할, 눈이나 얼음으로서의 역할이 다른 것 뿐이지 하나의 물로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경의 삼위일체도 결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그러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생물학에서는 인간을 이원론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육체와 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만이 삼원론으로 봤습니다. 인간에게는 육체가 있고, 혼이 있고, 영이 하나 더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식물은 육체만 있는데 동물에는 육체와 혼이 있습니다. 모든 생각하는 영혼을 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육체와 혼 외에 영이 하나 더 있으며, 영이라고 하는 것은 양심입니다.

제 가 얼마 전에 타임지를 읽어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거의 다 오른손잡이가 많지요. 그런데 동물은 전부 왼손잡이랍니다. 그래서 맹수가 짐승을 쫓을 때 꼭 왼손이 먼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맹수와 딱 부딪혔을 때는 오른손 쪽으로 자꾸 돌라는 이야기입니다. 왼손 쪽으로 가면 금방 동물의 왼손에 치인답니다. 오른손 쪽으로 빙글빙글 돌면 순간을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께서도 동물과 인간 사이에 어떤 구별을 두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에게는 영이 하나 더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보면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짐승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죽으면 그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로 제사를 지냅니다. 죽은 영혼이 어딘가 있을 거라는 그것이 양심과 관련되어서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그와 관련된 말씀이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령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영과 혼과 몸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이 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동물에 포함시켜 가지고 육체와 혼이 있다고 하지만 성경에서만 영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봐도 인간만이 제사를 지내고, 어떤 미개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내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서에, 인간은 영원을 사모한다는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내세에 대한 어떤 관념이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무엇이고, 또 삼위일체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과 과학 :: [3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상)

 

보이지 않는 멋쟁이 하나님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골 1 : 15)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많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대단히 많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 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으며, 또한 사람과 같이 사랑 (요일 4 : 7-8) 하실 줄도 알기 때문에 믿는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그의 능력을 충만시켜 우주를 붙드시고 우주를 그분의 뜻대로 질서에 따라 운행하신다. 그러한 무한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를 창조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불가능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욥11 : 7)

그러나 인류의 역사적, 과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허무맹랑하게만 생각되었던 성경의 기록이 시대가 지남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감으로써 현대인이 성경을 보는 눈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 = 인류미래사 (연대)

“주 예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 : 7)

역사라고 하는 것이 인류의 과거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라면 성경은 인류의 미래사를 연대 없이 기록한, 다시 말하면, 우주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History = His + Story) 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 속의 많은 예언들은 오늘날 이미 이루어진 과거사로 있으며 앞으로 올 미래사도 있는 것이다.



성경이 난해하다는 이유는, 성경 중의 많은 말씀이나 예언들이 시대가 지나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후에, 혹은 어떤 과학의 발달로 그 사실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었을 때에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현대 과학(1945년 7월 16일 최초의 원폭실험 이래)으로서만 설명이 가능한 에스겔서의 말씀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런데 에스겔서는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장사할 사람으로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일곱 달 후에 그들이 살펴보되 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벼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성의 이름도 하모나라 하리라” (겔 39 : 14-16)

이는 바로 핵전쟁 후에 올 장사(葬事)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원자력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말씀이다.

일곱 달 후에 순행자가 사람의 뼈를 발견하면 그 곳에 표를 세우고 지나가고, 그 후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한다고 되어 있다.

이 와 같이 하는 이유는 핵전쟁 후 7개월이 경과되어야 방사능이 수백분의 일 정도로 감소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살은 썩고 뼈만 남아 있겠지만, 그 뼈 중에서 아직도 허용치 이상의 방사능이 나오므로, 반드시 방사능 차폐 복장을 한 장사팀이 와서,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핵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동시에 성경이 얼마나 정확하게 예언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1981 년 미국의 미시간 대학의 Kirshner 박사, 예일 대학의 Oemler 박사 등 5명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미국의 화학회에서 발간하는 Chemical Engineering News의 10월 19일 호에 발표되어 과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 원본의 일부를 성경 말씀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Stellar Region Nearly Empty of Galaxies.…A team af astronomers has found a huge region near the North Star that is nearly empty of visible galaxies. It covers 30°to 40°of the sky and takes up about 1% of the entire observable universe. In fact, it is large enough to hold about 2000 galaxies the size of the Milky Way.
"To have found a population density of less than three times the average would have been a rare find." "But finding that the density is about 10 times less than the average is exceedingly hard to understand."
…Building from such a fairly uniform distribution, they had not predicted that such a vast region of space would be so empty.…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He(God) stretches out the north ever empty place] 땅을 공간에 다시며 (and hangs the earth on nothing)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욥 26 : 7-8)

그 내용은 북극성 주변의 방대한 지역, 즉 2천여 개의 은하수를 넣을 수 있을 만큼 큰 지역이 거의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은하수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대단히 큰 것으로 상상되는 태양계(반경이 약 59억km)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해서 모두 10개의 별을 가지 아주 작은 계 (System) 이지만, 전체가 렌즈 모양으로 생긴 은하수는 약 1천억 개(10의 11승)의 별을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별들의 집합체이다. 지구는 이 거대한 은하수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그 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거대한 은하수 약 2천여 개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거의 텅 빈 채로 지구의 북쪽에 보이는 북극성 근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우주 공간에 별들의 밀집도 (Population Density) 가 평균 밀집도의 1/3 정도 되는 곳도 흔하지 않은데 이 지역만은 평균 밀집도의 1/10 미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천문학자들이 최근까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점과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된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 말씀들이 오늘에 이르러서야 과학자들에 의하여 그 신비의 베일이 하나씩 하나씩 풀려가는 사실 속에서 새삼스럽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는 것 같으며 우리가 이루어 놓은 모든 학문은 초등 학문이라는 성경 말씀이 이해된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갈 4 : 3)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 : 8)

현존, 불변하는 절대자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실까? 물질계 (Universe, 우주, 시간과 공간) 를 규명하는 물리적 법칙은 시공간 연속 (Space-Time Cortinuum) 이론으로서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규명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that I am…) " (출 3 :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주의 영 (Spirit) 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 (liberty) 이 있느니라” (고후 3 : 17)

하나님은 자기의 존재를 “I am that I am(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라고 표현했다. 시제를 ‘현재'로 사용한 것이다. 우주 공간의 모든 변화는 시간의 함수이다. 현재라는 개념은 미래와 과거의 경계, 즉 정확하게 시간이 정지된 상태, Zero-Time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간이 영 (Zero) 이라는 정지의 개념은 불변의 의미로서, 절대성을 의미한다.

다 시 말하면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언제나 현존하는 변화하지 않는 절대성을 가진 존재이시다. 언제나 현존하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곧 구속을 초월하는 영 (Spirit) 이며, 자유 (Liberty) 인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시다.

유한한 우주, 무한한 하나님

일찍부터 이 거대한 우주를 연구, 관찰해 온 인류에게는 우주는 유한한 것일까, 무한한 것일까? 하는 것이 커다란 의문점으로 남아 있었다. 고대 희랍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에서 시작해서 코페르니쿠스(1473-1543), 갈릴레이(1564-1642), 뉴톤(1642-1727), 칸트(1724-1804)에 이르기까지 이 논쟁은 계속되었으며, 그 해답은 우주는 무한하다는 것이었다.



그 러나 이 ‘무한'이란 말의 개념 그 자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이라는 뜻을 설명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특히 만유인력설을 주장한 뉴톤은 무한정 퍼져 있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라는 소위 ‘절대시공간'이론을 주장했지만 20세기 초 그 당시 젊은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은 절대 시공간 이론을 부정하고 앞에 언급한 상대성 이론의 근간이 되는 시공간 연속 이론을 발표하여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 : 8)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 : 4)

위의 두 말씀이 상대성 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상대성 이론을 쉽게 이야기하면, 관찰자의 위치나 마음상태에 따라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시간이라도 즐거울 때는 빨리 흐르지만, 괴로울 때는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물질이 존재하는 시공간은 휘게 되고 (Curvature of Space), 이 휘는 성질 때문에 중력(만유인력)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질이나 빛(힘)의 존재에 의해서만 규제되는 우주의 시공간은 휘게 되고 따라서 이 거대한 우주는 유한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 거대한 우주를 붙들고 있는 ‘만유인력'을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 : 3)

유한 우주의 개념은 적어도 두 가지 조건, 즉 우주의 중심 (Mass Center) 과 우주의 가장자리 (boundary) 가 설명되어야만 성립된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서 우주의 중심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결코 찾을 수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리적으로 유한한 물체에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중심을 유한한 우주에서는 찾을 수 없다면(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 : 5-6)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 : 17)

성경 말씀 속에서 천문학자들이 수십세기 동안 찾아 온 해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하는 이 거대한 우주는 유한하며, 창조자 하나님만이 무한하다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성경과 과학 :: [4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하)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



태 양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에너지를 알아보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수소가스에 만유인력(중력)이 작용하여 수소를 한 곳으로 모이게 한 것이 태양인데, 그 중심부는 약 4천억 기압(중심부의 수소 밀도는 88)이라는 엄청난 압력 때문에 온도가 섭씨 2천만 도나 된다(중력→압력→열).
이와 같은 높은 압력과 온도는 수소 기체를 헬륨 기체로 바꾸면서 엄청난 빛과 열을 발생한다.(이것이 바로 핵융합으로서 수소폭탄의 원리이다)

이 렇게 해서 태양에서는 X광선에서 라디오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파장의 여러 가지 빛이 방출되는데, 이 중에서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제외한 자외선이나 우주선(프라스마 등) 등은 생명체에 유독한 빛이므로 지구 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욥 38 : 9-11)

다행스럽게도 욥기에 기록된 “강보”, 즉 오존층과 반알렌 벨트라는 방사능 벨트에 의해서 유해한 자외선과 우주선들이 모두 차단되므로 지구상이 모든 생명체가 보호를 받고 있다.

인간의 연약함 중의 하나는 태양에너지를 직접 취하여 육체 활동에 이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식물이나 동물을 통해서만 에너지를 얻는 데에 있지 않을까?

만유를 붙들고 있는 힘은 곧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다(히 1 : 3), 이렇게 우주(우주 = 시간 + 공간)의 모든 공간(공간 = 물질과 빛이 존재하는 곳)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 존재한다.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 : 19)

하나님을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신 성부, 특히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갖은 곤욕을 치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과, 그 후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회의를 느껴왔다.

그러면 이제 삼위일체를 우리들의 자연현상 속에서 한번 관찰해 보자.
우리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통해서 창조자의 능력과 실존을 이해하고 그를 경외하게 된다. 지구상의 생명과 가장 관계가 깊은 물의 역할과 삼위일체를 비교해 보면 삼위일체의 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 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세 가지의 중요한 형태(Phase)를 갖는다. 즉 구름이나 수증기 같은 기체상태, 물의 형태인 액체상태, 그리고 온도가 내려가면 얼어붙은 얼음이나 눈과 같은 고체 상태의 세 가지 다른 물리적 집합 형태를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집합 형태의 상호변환은 지구상의 각 계(System)의 에너지 균형을 조정함으로써 자연계의 질서 및 균형을 이루어 주고 동시에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의 생명을 보호,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각의 상이 자연 중에서 하는 일이 모두 서로 다르고 대단히 독특하다. 하지만 물이라는 속성은 변화하지 않고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 : 13)

이와 같이 성부의 시대는 말씀의 시대로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창조의 뜻을 전해 주었고, 성자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잠시 인간의 육체를 빌어서 우리에게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증명하여 주셨으며, 오순절에 내린 성령은 오늘날까지 교회를 통해서 창조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물의 역할이 그 형태에 따라서 다르듯이 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이지만 그 역할이 시공간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것은, 그 논리가 정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경의 역사성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체

이러한 끊임없는 에너지의 공급에 의해서 그 생존이 가능한 인간의 육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3 : 19)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 지구상에는 수소(원자번호 1)에서부터 우라늄(원자번호 92)까지 92가지의 원소가 서로 결합하며 흙이라는 모양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육체는 이 중에서 수소, 산소, 질소, 탄소를 포함하는 24종류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조직은 너무나 복잡해서 현대 과학을 총동원해도 극히 일부밖에 설명할 수 없다.

지역에 따라서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고, 앓는 병의 종류도 다르며 특히 지역 고유의 향토병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은 그 지역의 흙의 성분이 서로 달라서 인체 내 필요한 24가지의 원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식물을 통해서 흙에서 섭취하는 원소는 인간에게 필요한 24종류의 원소이고 나머지 원소는 인간의 육체 밖에서 직접, 간접으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의 형태로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그 육체는 분해되어(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창 3 : 19) .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흙에 속한 것이다. 인간 역시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흙(집) 속에서 흙을 먹으며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그러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식물,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생물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생물을 식물과 동물로 구분해 왔다.

그리고 동물 중에서 인간은 사고(생각)하는 동물(인간 = 육체 + 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정말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이것밖에 없을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좀더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면 이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

‘생각(혹은 정신)'이란 비물질적인 차원에 속하며, 경계도 없고 또 고정된 한계도 없다. 정신 세계에 대한 물질 세계의 관계는, 전체에 대한 아주 작은 부분과 같다.
그런데 이렇게 경계도 한계도 없는 인간의 생각은, 한정된 아주 작은 육체 속에 그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육체가 추구하는 것에 한정되기 쉽다.
즉 인간의 생각은 훨씬 큰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작은 육체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그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육체의 욕구와 그 욕구를 제어하려는 양심의 틈바구니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평생을 살아간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양심이 있으며, 미래(더 나아가서 영원)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이는 사람에게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육체와 혼 이외에 또 하나의 속성인 ‘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히브리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인간에게는 육과 혼 외에도 영 (Spirit) 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인간 = 육 + 혼 + 영)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 : 12)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 : 23)

사실상 원시인이나 근대인, 무신론자나 유신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사후에 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 내지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전도서 3장 15절 에 나타나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이 곧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일 것이다.
영 원을 사모하는 영(Spirit)과 자유(Liberty)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의 양심 속에 있는 완전한 자유, 곧 시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양심의 자유는 영의 속성으로서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며, 이것만이 영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양심의 자유는 어떤 국가나 사회, 금전이나 권력에 의해서 얻어지거나 짓밟힐 수 있는 자유가 아니고, 오직 무한한 능력의 창조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 : 27-28)

하나님의 형상(Spirit)으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단절되었던 선한 양심(영)을 다시 찾고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얻는 것이 인간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료를 공급하는 하나님의 능력

 

 

 



식물이 자라는 데는 3가지의 원소 즉 질소(N), 인(P), 칼륨(K)이 꼭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식물 성장에는 질소성분이 가장 중요한 원소이다.
어떤 흙 속에는 질소 성분이 전혀 없는데도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고, 특히 높은 산 바위 틈에 자라는 식물은 질소 성분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리라” (욥 36 : 30-31)

욥기에 기록된 대로 비오는 날의 번개가 질소 비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번개가 칠 때 30만 볼트 이상의 전압하에서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가 방전에 의해서 산화질소(NO)가 되고 이것이 비에 섞여서 식물 성장에 필요한 질소 비료를 공급하는데, 번개는 세계적으로 초당 100번 정도 치는 것으로, 연간 30억 번의 번개가 치는 셈인데 이 번개에 의해서 생성된 질소 성분이 지구상의 식물이 필요한 질소량의 약 반을 공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번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얼마나 과학적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는?

그러면 지구상에서 인간의 영원한 생존은 가능한 것일까? 물리학에서 최대의 신비는 중력과 빛인데,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의해서 이 빛의 신비가 벗겨지면서 발생된 우리 인류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이 엄청난 빛의 신비는 대량 살상 무기인 수소 폭탄과 원자 폭탄을 생산함으로써, 인류에게 복지 대신에 대량 학살이라는 무서운 핵전쟁의 위험을 안겨 주었다. 인간을 위한 과학이 전 인류의 떼죽음을 부르다니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무서운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간이 이러한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땅(바위) 속 깊숙이 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이미 계획하고 있는 미국의 우주비행 계획같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서 외계로 나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2천 5백 년 전에 오바댜를 통해서 오늘날의과학과 인류의 장래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라” (욥 1 : 3-4)

고도로 발달된 과학에 의해서도 인간의 영원한 생존은 결코 보장될 수 없으며 우주의 어느 공간에도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오직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길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길뿐이다(요 17 : 3).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기의 계획을 인류에게 보여 주고 있으며 역사적,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실존을 증명하고 있다.

지 구상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기계 문명 속에서도 완전한 평화와 안전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목말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상에는 자그마치 45억의 인구 각각에게 3억 7천만 톤 이상씩 배당될 만큼 많은 물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물로도 인간 육체의 영원한 해갈을 면할 수 없음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 : 14)

창조자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계 22 : 17) 를 얻는 길이다.


성경과 과학 :: [12회] 흙과 생명 2

 

그러면 생명체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놓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9)

“네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을 때에 나의 향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시 139:15)

인간의 육체는 지구(땅)를 이루고 있는 약 100여개의 원소 중에서 23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 생태학자인 Edward Deevey 2세는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기본 원소를 다음과 같은 화학분자식으로 표시했다.

H 2960 O 1480 C 1480 N 16 P 18 S 1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원소는, 가장 가볍고 물의 주성분이 되는 수소와 산소, 그리고 탄소, 질소, 인 황이다. 그 외에서 17가지의원소가 상호 결합하여 인체(혹은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 특히 소량의 존재하는 13가지의 원소는 비록 양은 적지만 인체 내에서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서 그 어느 하나라도 꼭 필요한 양만큼 존재하지 않으면 그 육체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다. 사실상 23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진 아주 복잡한 구조의 인간 육체의 조직은, 그 종류가 무수히 많고 그 기능과 역할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렇게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이들 모든 원소들은 모두가 땅 속에서 얻어진 것이다 (창 3:19) .
인간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직접 흡수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식물이나 동물을 통해서 공급을 받는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성분도 직접 흙으로부터 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식물을 통해 취한다. 식물은 필요한 자양분을 흙 속에서 취하여 광합성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자란다. 그러면 인간의 육체는 이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흙 속에서 있는 자양분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취하여 성장,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육체가 생명을 잃을 때 그 육체는 분해 되어(썩는다) 흙의 성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창 3:19).

우리 육체를 담고 있는 집의 모양은 다양하며 그 집의 재료 또한 여러 가지다. 그러나 초가집이든, 철근, 콘크리트 집이든, 벽돌집이든 그 집의 재료는 모두 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흙에서 나는 것을 먹으면 흙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흙 속에서 태어나서 흙 속에서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