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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전문

송화강 2012. 7. 22. 10:38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지은이 : 안톤 슈낙(Anton Schinack) 옮긴이:김진섭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 씌여진

‘아이세여 나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를 읽을 때

 

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여져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갔다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 없이 슬프게 한다.

 

휠더린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 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자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 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누구인가 모래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서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 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제씨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를 할 때.

 

공동 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 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하고 한날

 

도회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랜 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 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밭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 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 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 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어깨. 유랑 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누우트 함순>의 두세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안톤 슈낙(Anton Schnack)(1892-1973)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Was traurig macht)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안톤 슈낙의 글은 젊은 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글귀를 암송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교과서에 처음 실린 것은 단기 4286(1953)년 고등국어 2에서다.

 

1953년에 처음 고등국어 2에 실린 이 텍스트는

이 텍스트가 교과서에서 사라질 때까지

전혀 문장의 첨가 내지는 손질 없이 그대로 실려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도 같은 글이 실려있으며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뿐만 아니라

실업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있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쓴 안톤 슈낙 Anton Schnack이란 누구인가?

그의 이름을 어떤 독문학사에도 찾을 수 없으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이 수필이 실려 있는

Die Angel des Robison(1946)라는 책을 독일 도서관에서 찾기도 무척 어렵다.

안톤 슈낙이라는 작가는 한국에서 그렇듯 많은 찬사를 받고

그의 수필이 애독되고 있는 반면에 독일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그는 1892년 7월 21일 독일 프랑켄, 리넥에서 태어났으며

신문기자로 다름스타트, 마인츠와 프랑크푸르트에서 일했다.

2차대전 때 미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으며 그후 1973년 81세로 사망할 때까지

칼이라는 마을에서 산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들이 이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산문수필을 애독하고 있을 때도 그는 아직 이 세상에 살었던 우리의 동시대인이었다.

 

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은

막스 밀러(Max Müller)의 '독일인의 사랑 (Deutsche Liebe)'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처럼

독일문학사에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그 어느 작품보다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독일작품이다.

 

독일독자층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왜 한국에서는 그렇듯 애독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은 한마디로 단정 지워 말하기는 어렵지만

번역자의 뛰어난 번역과 이들 작품이 지닌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등이

한국인의 정서와 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외에도

오 헨리(O Henryi)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b),

알퐁스 도테(Alphonse Daudet)의 별(Les Etoile)이라는 작품들이

1980년대까지 한국 국어교과서에는 실려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90년대에 와서는 독일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작품들이 한국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교과서에서 명문(名文)의 시대는 1970년대로 끝났다.

이리하여 국어(國語)의 황량한 풍경은 개막됐다.

이제 국어 교과서의 문장(文章)들은 아무런 감동도, 감명도, 감흥도 주지 않는다.

혈색마저 잃은 빈혈(貧血)의 범문(凡文)만이 행세하고 있다.

명문(名文)을 읽지 못하는데 명문(名文)이 나올 리가 없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

1981년 제4차 교과서 개편 때부터 종적을 감추고 만 사실에 대해서

한 원로 언론인은 이와 같은 소회를 어느 잡지에 기고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전문을 외우고

이 글의 정조와 음조를 자신의 글쓰기의 키노트(key note)로 삼기까지 한 그 분은,

독일에서도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무명의 작가가

우리 국민의 문장교육을 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교과서에서 추방당한 것은

그야말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적고 있다.

아마도 가장 좋아하는 산문작가로 안톤 슈낙을 꼽았던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 님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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