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과 우계 옥계 옥천
강릉유씨의 본향(本鄕)인 강릉에 대하여 고증(考證)해보면 강릉의 고호(古號)가 고구려 때에는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고도 하였고 신라 때에는 명주(溟洲) 또는 소경(小京)이라고 하다가 신라 19대 태종 무열왕(武烈王) 때에는 주(州)로 승격하였고 고려 태조(太祖) 때 동경(東京)이라고 하다가 또 명주(溟洲)로 개칭하였고 고려 6대 성종(成宗) 때에 하서(河西)로 고쳤다가 다시 명주(溟洲)주라 하였으며 24대 원종(元宗) 때는 경흥(慶興)으로 불렀다가 25대 충렬왕(忠烈王) 때 와서 다시 강릉(江陵)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구려 때 강릉의 속현(屬縣)이 셋이 있으니
지산(支山), 양곡(陽谷), 우곡(羽谷) 또는 옥당(玉堂)이었다.
지산(支山)은 동토지산(東土支山)이라 했는데 고려 때는 연곡(連谷)이라 했다.
동토지산(東土支山)은 신라 때 동제(棟堤)라 했고 우곡(羽谷)은 신라 때 우계(羽溪)라고 하였으며 고려 때도 같이 불러오다가 고려 현종(顯宗) 때 명주(溟洲)에 속하게 하였다.
어떻든 모두 강릉을 칭한 것으로서 우곡(羽谷)은 일명 옥당(玉堂)이라고 하다가 옥성(玉城)으로도 불렀으나 뒤에는 옥천(玉川)으로 개칭하였으며
우계(羽溪)가 강릉부(江陵府)로 편입 되면서 강릉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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