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송씨 송규 서기 926년 왔노라고..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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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송씨 도시조 송규의 한자 표기에 관하여
윗글의 주소에 들어가면 남양송씨 족보 계보도가 나온다.이곳에서 남양송씨 도시조 송규의 한자(漢字) 표기는 宋圭가 아닌 宋奎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함께 동도해온 강릉유씨 도시조께서 남기신 문집 죽간일집에는 저자 유전은 남긴 문집에서 중국에서 팔학사로 함께 온 동지인 남양송씨 도시조가 될 송규의 한자표기를 宋奎가 아닌 宋圭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함께 동도해 온 팔학사는 한반도에 건너 오면서 소위 팔학사 시문을 한줄씩 남긴다.
그 시문에는 송규의 한자 표기는 宋奎로 되어 있다.두 표기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판별할 수없다.
팔학사 동도시<八学士 東渡詩》
林八及/ 八人浮海兮 桂棹蘭檣. 여덟사람이 바다 건너옴이여 계수나무 돛대, 난초 삿대로다
薛仁敬 /仙李運盡兮 賢士被讒 .당나라의 운수가 다 함이여 어진 선비가 참소를 입었도다
劉 荃 / 波濤闊矣兮 舟楫利逝로다. 파도가 넓음이여 뱃길이 편히 가도다.
許 董 / 吾徒東矣兮 可以免禍.우리들은 동쪽으로 가니 가히 화를 면함이로다
宋 圭 / 接淅而去兮 謝暗投明.行色匆忙 행색총망히 떠남이여 어두운곳 버리고밝은곳 찾아가네.
崔 沍/李老入海兮 殷道衰亡.기자와 미자 두어진이가 해외로 떠나니 은나라는 곧 망하리라.
權之奇/賢士出東兮 竭誠盡忠 어진선비가 동쪽으로 감이여 충성을 다 하리다
孔德狩/見機而作兮 疏廣之徒 기미를 보아 행함이여 소광과 같은 사람들이로다
<남양송씨 족보 1801년보,1860년보>
《林氏上系代考(1) 2018 林容源 250 쪽 기재>
秋蘭詩和宋御史大夫圭 秋蘭詩를 어사대부(규)에게 화
답함
百卉彫零節 온갖 백화 저버린 가을철인데
幽香獨自含 난초꽃만 제홀로 香氣를 풍기네
可愛紉爲佩 너무 사랑스러워 허리에 차고
行吟屈子潭 굴원(屈原)의 못가에 거닐며 읊노라.
927년이라고 한 블로그 글
http://cafe.daum.net/scsong/EZqc/4
고흥군 대서면 안남리 화산리 거주자 집성촌
그러나,
송규등 팔학사가 동도해 온 연대는 서기 782년이다.
https://cafe.daum.net/rose901/S7c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