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증조 유승비
강릉유씨세보에 따르면 유전(劉荃)은 거창에 살았으며 큰아들 유견규(劉堅規)가 거타군(居陀君: 거창)에 봉해졌는데, 강릉유씨의 중시조(中始祖)격인 유창(劉敞)의 증조 유승비(劉承備)가 좌복야를 지내고 강릉의 우계(羽溪)로 은퇴했다고 한다.
그 후 유창이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됨으로써 강릉유씨와 거창유씨의 2본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左僕射
995년(성종 14) 상서성이 설치될 때 처음 우복야와 함께 두어졌다. 문종 때 우복야와 같이 품계는 정2품이고 정원은 1명이었다. 정2품이면서도 재신이나 추신에 들어가지 못하는 낮은 지위였으며, 6부상서와 함께 8좌로 통칭되어 재상계열보다는 정3품의 상서계열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