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2월 12일 구련성 도착 윤찬 동지사 서장관
윤찬이 1845년에 중국갔다와서 이듬해 족보에
금석판 중국상계를 실었다고 했으므로 1846년 병오보 부터
우리의 중국 원조를 유방이라고 부른 싯점이 되겠다.
그러나 1852년 임자보 서문에 고려 문종때 왔다고 써있다.
아니다,2018.7.17일 유경상은 유방의 후손이라고 한것이 쓰여진 가짜 비석에 그것이 써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평장사 조자기씀이라고 쓴 가짜 비석에 충렬왕도 나오고 공민왕(1330년 등극)도 나오는 조자기 서기1010년,1012년 무공을 세운 장수 가 썼다고 하는 가짜 비석에 이미 유방자손이라고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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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osy900/5662080
수많은 윤찬 들의 이름을 적어본 글이 위 주소의 글에 있어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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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osy900/5662081
尹程(1809-?)이 1844年(憲宗 10)에 冬至使의 일행으로 청나라에 사행을 갔다가 와서 견문한 내용을 燕行錄으로‚ 2冊의 筆寫本이다. 尹程의 자는 景灝‚ 본관은 坡平으로 行心의 아들이다. 1844년의 冬至使에는 正使 李晸應‚ 副使 權大肯‚ 서장관 尹禾贊 등이 갔는데 자신은 族兄인 서장관 윤찬을 따라 참여하였다고 하였다. 서문과 10월 26일의 기록에 尹程이 사행을 떠날 때에 어머니가 견문한 내용을 기록하여 와서 보여줄 것을 요청하였고‚ 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사행시에 견문을 기록한 글이 산일되고 누락된 것이 많아 이제 남은 것을 수습하여 책을 엮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은 1845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록기간은 1844년 10월 26일부터 1845년 2월 12일까지이다. 일기‚ 부록의 순서로 실려 있다.1844년 10월 26일 서울을 출발하여 개성‚ 평양‚ 의주를 거쳐 11월 22일 압록강을 건넜다. 각 군현의 수령이 사신을 접대한 사실 및 각처의 누정 등에서 지은 한시를 수록하였다. 이어서 九連城‚ 柵門‚ 鳳凰城‚ 瀋陽‚ 山海關‚ 通州 등지를 거쳐 12월 21일 북경에 도착하였다. 여정 도중에 각지의 역사‚ 인물‚ 풍속‚ 자연환경 등을 기록하였다. 압록강에서 柵門까지 100여리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으며‚ 봉황성은 安市城의 유지라고 하였고‚ 심양에서는 성의 규모와 성내의 太學 등을 돌아본 소감을 썼다. 특히 寧遠 등지를 지나면서 袁崇煥‚ 祖大壽 등 明末淸初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다. 북경에 도착한 뒤 황제가 베푼 年終宴에 참석하고 太學 및 북경 거리를 관광하였다. 1845년 정월 1일 장안문의 신년하례에 참석하였으며‚ 2월 4일 북경을 떠날 때까지 북경 시내의 여러 명소를 찾는가 하면 청의 학사·관인들과 만나 시문을 수창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2월 4일 북경을 떠나 사행길을 거슬러 2월 12일 구련성에 도착하였는데 일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부록에는 황제가 頒賜한 물품을 기록한 <朝鮮賞單萬壽聖節功賞>‚ 중국 문무 관리의 관복과 봉록을 적은 <文職官階品級頂服俸祿>‚ <武職官階品級頂服俸祿>이 실려 있다. (김남기)
윤정(尹程)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c_A1809_1_0018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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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9(수) 의견
서장관 윤찬을 따라 참여했던 서장관 윤찬을 족형이라 부느는 윤정尹程(1809-?)이 1844년 10월 26일부터 1845년 2월 12일까지 다녀와서 쓴
燕行錄이다.위의 글에 보면 서장관 尹禾贊도 나오는데 유정이 족형이라 부르며 따라간 인물명은 서장관 윤찬이라고 나온다.
그럼 서장관 윤화찬과 윤찬 두명이 그 동지사팀에 있었는지 또는 같은 인물의 다수의 이름이 혼란하게 출현하는 현상인지 이는
실제 1844년 동지사 명단을 구득해 보면 알 수있을 것이다.
위의 기사를 보면 제목에서 冬至书状官-尹瓚-西行绿 이라고 표기 한 것은 내가 그냥 써본 한자이다.
주인공 윤찬이 우리 문종의 발간 종보에는 한자로 尹璨으로 나온다.그런데
이곳에는 한글로 "윤찬"이라고 써있네 그러나 이 윤찬이 尹璨인지는 1844년 동시사 서행록을 찾아서 확인이 필요하다.
인물이 맞다고 한다면은 그 동지사가 귀국한 날자는 1845년 2월 12일(구련성착) 이된다.
서장관 尹禾贊 을 따라 갔다고 하니까 우리 종보에는 서장관 윤찬이라고 했으므로 위의 글쓴 사람이 글쓰다가 많은 철자의 오기를 냈을수도.
서행록이란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8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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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앙도서관 권지이 죽간일집의 8페이지에는 이런기사가 나온다.
言于两铨(吏曹和兵曹)任子春书状官洪师范赴皇都时上疏。。。。나온다.
즉 정몽주 가 서장관으로 갈때 남경갔다온 기사인데.....
http://blog.daum.net/kyd5111/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