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유씨 중국선조(江陵劉氏 中国先祖)
평정산시 유루제사(平頂山市劉累祭祀) 참가와
유전시조(劉荃始祖)의 고향
하남성 맹주 방문기 (河南省 孟州 訪問記)
이번 중국 조상의 제사 참석 여행은
大田의 유풍종님과 함께 2016.4.16-4.22일간 중국 하남성 평정산시 노산현 소평호(中国河南省 平頂山市 鲁山县 昭平湖) 언덕에 위치한 유루선조 사당에서 매년 4월 19일 드리는 유루선조 제사 참석과 한반도 유씨의 도시조(韩半岛劉氏都始祖)이신 유전(劉荃) 시조의 고향인 중국 하남성 맹주(孟州) 방문으로 이루어졌다.
2016년 4월 16일 아침 여덟시 인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비행기는 중국 정주에 위치한 신정공항(新鄭空港)에 현지시간 아홉시 사십분 착륙했다.이곳에는 평정산 유씨문화연구회의 35세 젋은이 선전부장 유지봉(劉志峰) 종친이 차로 마중나와 있었다.
2016.4.16 첫째날/입국 및 유루시조의 사당참배/회장 환영 만찬
곧 바로 두시간을 달려 평정산시 노산현 하탕진에 위치한 평정산 유씨문화연구회 회장이신 유송림(劉松林)
회장이 운영하는 황고욕온천국제호텔(皇姑浴温泉国際大酒店)에 짐을 풀었다.
이곳 온천호텔은 인근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은 불상(佛像)과 요산(堯山) 관광지가 있어서 그런지
목욕료가 중국돈 168원/한국돈 3만원이나 되지만 온천욕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4성급호텔.
호텔에 여장을 풀고 中食을 마친후 곧 바로 유지봉 종친의 차로 10여 Km 떨어진 유루 시조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이 유루 시조 비석 뒷편에 보이는 부분이 유루 시조의 산소이며 둥근 묘에는 보이는 것어럼 묘태석이 잘 둘러져 있다.
위사진은 말레이시아 고 유남휘(劉南輝)종친님 기념관입니다.우측에는 유창(劉敞)우리 선조님 상이 보입니다
,
이곳 소평호수(昭平湖) 옆에 위치한 유루선조의 묘소에는 제각과 함께 말레이시아 4대 재벌의 한 분인 故 刘南辉(유남휘)님의 사당도 몇년전 건축했는데 이 유남휘님의 사당에는 우리의 중시조이신 유창(劉敞) 선조님도 모셔져 있었다.
말레이시아 유남휘(劉南輝) 사당에 모셔진 한국 유창(劉敞) 선조상
유남휘(劉南辉)선생은 12세인 1929년에 가정 빈곤하여 어머니를 따라 말레이지아에 간후 이곳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최고의 작위인 단스리(丹斯里:Tan Sri) 작위를 얻고 사업에도 성공하여 말레이시아의 4대부호가 되며,항상 고국을 사랑하여 모든 해내외 종친회에 참가하시다가 지난해 2015.2.10일 98세에 작고하셨다.
생전의 유남휘 종친
이어서 저녁쯤 유송림 회장께서 세계유씨 연의총회 상무부주석 유전신(世界劉氏聯誼總会常務副主席劉全新) 종친을 대동하고 오셔서 회의실에서 우리들과 접견 모임을 갖었다.
저녁에는 회장이하 종친들과 환영 만찬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유씨의 현황과 처음 이곳 유루시조의 제사행사에 참석하는 소회 그리고 이번 중국조상찾기
여행(中国尋根旅行)의 동기와 방법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유전신(劉全新) 종친께서는
바로 맹주(孟州) 종친회장을 소개하면서 내일 맹주방문을 주선해 주었다.
첫날 한국종친 래방 환영 만찬장
2016.4.17 이튿날/맹주 방문(河南省孟州訪問)
이곳 회장이신 유송림(劉松林) 회장께서는 차량과 젊은 운전수를 오늘 맹주방문을 위하여 주선해 주셨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 바로 이곳 옆에 위치한 하탕진(下塘镇) 인터체인지에서 낙양(洛陽) 고속도로를
한시간 반정도 달려 황하강(黃河江)을 건너자 바로 맹주땅에 접어들었다.
중국 하남성 맹주시 지역 지도
위의 맹주 지도에서 옛 지명 하양(河陽)의 범위는 위에 푸른색으로 마킹한 세부분을 아루르는 지역이다.
즉 위의 槐树옆 쌍와(双洼)라는 지역이 당시의 관청자리이며 지금의 맹주와 현재 吉利區라고 해서 현재의 낙양시의 한개 구(區)인 길리구(吉利區)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이 즉 옛날 하양(河陽)이다.할아버지는 이 곳에서 서기 751년도에 태어나셨다.槐树(괴수:화이수) 중국어에서는 아카시아이며 이번 여행에서 호텔의 고급요리중 아카시아꽃 튀김이 항상 나왔고 인상깊었다.
즉 하양이란 지금의 낙양앞의 황하강을 건너면 바로 닿는 지역이 곧 맹주이자 옛지명 하양(河陽)땅이다.
하남성(河南省) 길리구(吉利区) 하양신촌(河阳新村)아파트단지
맹주(孟州)의 옛 지명은 하양(河陽)이다.하양의 역사는 이러하다.
汉武帝元封五年(前106年)置河阳县,故治在今孟州市槐树乡桑洼村。属河内郡。新莽改称河亭县。东汉、魏、晋、北魏均称河阳县。北魏太和中至东魏元象元年(公元538年)先后筑河阳三城,河阳三城遂为洛阳以北军事重镇。北齐天保七年(556)废河阳县为河阳关。隋开皇十六年(公元596年),置河阳县。唐武德初改为大基县,置河阳宫。八年,改称河阳县。咸亨五年(公元674年)复大基县,属洛州。玄宗朝以讳复为河阳县。开元初,为东京畿邑,属河南府,武宗会昌三年(公元843年),设孟州,
한무제 원봉 5년(BC 106년) 하양현을 설치,현 맹주시 괴수향 상와촌에 현청을 두었으며,곧 하내군에 속했다.그리고 이어서 집권한 신망은 이곳 이름을 하정현이라고 고쳐 부렀으나,동한,위,진,북위등은 공히 하양현이라고 불렀다.북위태화(AD 477-499) 중기에서 동위 원상원년(AD 538) 년간 하양 삼성을 축조하고 이것은
낙양이북 지역의 군사요지가 된다.북제의 천보 칠년(556)에는 하양현을 폐지하고 하양관으로 하게된다.
수나라 개황 십육년(AD596년)에는 하양현을 두게되며,당 무종초에 다시 대기현이라고 부르며 하양궁을 설치,8년에는 다시 하양현이라고 고쳐부른다.함형 5년(AD674년) 또 다시 대기현이라고 하며,낙주 소속이된다.현종조에 다시 하양현이 되고,개원초에는 동경기읍으로,하남부에 속한다.
중국 당나라 무종 회창 3년(AD 843년)에는 맹주(孟州)로 이름이 바뀌다.
위의 맹주 역사에서 우리 한반도 유씨 도시조(都始祖)되시는 유전(劉荃) 시조께서는 서기 782년도에 한반도에 동도해 오시게 되며,유전 도시조께서 팔학사(八學士) 공히 동도(東渡) 해 오신 년대인 서기 782년으로부터 61년이 지난 서기 843년도에 비로서 맹주(盟州)로 그 이름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이미 서기 843년 이후에는 하양(河陽)이라는 지명은 없는 것이며 고향을 하양(河陽)땅라고 하신 유전 선조와 우리 한반도에 오신 팔학사의 동도년대는 서기 843년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이러한 중요한 사실들을 죽간일집은 우리에게 전하고있다.
즉 河陽家国今何處(하양땅 나의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귀절의 시문이다.
따라서 유전(劉荃) 한반도 유씨 시조의 동도년대는 서기 843년 이전인 중국 당나라때/한반도 연대로는 신라때인 782년도에 오시게 된다.1082년 송나라/고려때 오셨다는 현재의 사실에서 5갑자 착오인 300년 앞선 시기로 소급된다.관련고증문 http://blog.daum.net/rosy900/5663709
죽간일집(竹諫逸集)에 실린 시문(詩文)중에 泛舟游海上说往跡(바다위 배를 타며 지난 자취 이야기 하다)
라는 시문에서는 옛고향 하양(河陽) 그리면서 읇은 애절한 시 한수가 있다.
西風吹荡一孤舟(처량한 바람에 외로운 배 한척 흔들리고)
满目深秋正不收(눈에 가득한 시름을 거둘길 없어라)
河陽家国今何處(하양 나의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帆外江山是異州(돛배 밖은 이역강산)
위의 고향을 그리는 한 수의 시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바로
河陽家国今何處(하양 나의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인데 바로 그 고향 하양(河陽) 즉 맹주(孟州)땅
고향을 그리면서 영탄(詠嘆)의 시를 읊고 있다.
여기에서 가국(家國)은 무슨 뜻인가를 중국의 포탈( Portal)에서 검색해 본다.
家国을 _"百度词典" 에서 검색
家与国。亦指国家。(집과 나라.즉 국가를 가르킨다.)라고 나와 있다.
《逸周书·皇门》:“是人斯乃谗贼媢嫉,以不利于厥家国。” 汉 董仲舒 《春秋繁露·竹林》:“自是后, 顷公 恐惧,不听声乐,不饮酒食肉,内爱百姓,问疾吊丧,外敬诸侯,从会与盟,卒终其身,家国安寧。”《魏书·司马昱传》:“ 超 父 愔 为 会稽 太守, 超 假还东, 昱 谓之曰:‘致意尊公,家国之事,遂至於此
위의 시문 西風吹荡一孤舟(처량한 바람에 외로운 배 한척 흔들리고)에서 나오는 구정중 서풍(西風)의 뜻은
한층더 그 서슬한 마음을 표현하는 싯구(詩句)의 언어로써.....
이 구절에서 나오는 ”西風吹荡“에서 서풍(西風)의 중국 사전(辭典)에서의 설명은 이러하다.
西风比秋风更显的凄凉,无助
因为“西”字,使人易联想成“归西”“死去”之意,而古人更把它看的重
서풍(西風)이란 추풍(秋風)보다도 더욱 처량하다.(西风比秋风更显的凄凉)
그 이유인즉 서(西) 이 글자는 우리에게 서쪽으로 감을 연상시켜 곧 죽음을 생각케 하니까.옛사람은 그래서 이 서풍이란 단어를 즐겨 썼지...!
한시간 반을 달려서 이제 낙양을 빗기면서 황하강을 건너자 바로 맹주땅이었다.
이어서 곧 바로 하남성 맹주시 제북두마을(孟州市城关镇堤北头村)라는 마을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는 이미
맹주시 유씨종친회장등 세분의 종친이 멀리 떠났다 돌아온 형제를 만난듯 포응해 왔다.
세분의 종친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을 劉氏 시조 劉思義 사당앞에서 劉豊鍾,맹주 종친회장 劉天富,劉慶相,부회장 劉合禮,원로 劉謙義
이 마을에는 劉邦 선조의 9세손인 劉秀(汉世祖光武皇帝刘秀(公元前5年1月15日—57年3月29日)의 사당이
있는데 서기 1351년도에 창건하고 청나라때인 1759년도에 중수하여 지금은 제 7批國保로 관리되고 있다
이 유수 선조의 사당의 이름은 顯聖王廟이다.
한세조광무황제(汉世祖光武皇帝) 유수(劉秀)선조 사당 顯聖王廟
이곳 마을 시조님 사당에 참배한데이어 유수(劉秀) 선조님 사당을 돌아보고 나서 원로 유겸의(劉謙義)
종친님 댁으로 갔다.우리를 노산의 황구욕 호텔에서 태우고 온 차와 유겸의 원로님의 아드님이 모는
두대의 차량으로 이동했다.유겸의 원로님댁에서는 이번 조상의 고향을 찾게된 소감과 그 방법등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마치 고향에 온듯 화기애애한 모습은 잊을 수가없다.
환담이 끝나고 곧 이어서 종친님들은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우리에게는 특별히 환영의 뜻인가 자라요리를 한마리씩 요리상에 올려 주셨다.식사후에 바로 이곳 맹주출신인 유명한 당대 시인 문장가인 한유(韓愈) 공원으로 이동했다.
한유(韓愈)
韩愈(768年—824年12月25日),字退之,河南河阳(今河南省孟州市)人,汉族
唐代杰出的文学家、思想家、哲学家,政治家
한유는 우리 한반도 유씨 도시조가 이고장에서 태어나신 서기 751년보다 17년후에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당나라때의 걸출한 문학가,사상가,철학자이며 정치가였다.
한유(韓愈) 공원
이곳 맹주에서 배출한 걸출한 두분을 꼽는다면 당나라의 한유(韓愈)와 그보다 17년전에 이곳에서 태어나
당나라 조정에서 병부상서를 지내시다가 7학사와 더불어 한반도에 건너오셔서 지금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
45만의 유씨 후손을 있게한 유전(劉荃) 선조라 하겠다.
이곳 종친들과 석별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질때에 그 면면한 정은 육친인들 이렇게 깊을 수가 있을까.
맹주(孟州) 종친들과 한유능원(韓愈陵园) 에서..
우리 한반도의 유전(刘荃)선조의 후손들도 이 한유능원(韩愈陵园)같은 유전능원(刘荃陵园)을 이곳
조상의 땅(祖地)인 맹주(孟州)에 건립하는 날이 속히 와야겠다.
숙소인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또다시 저녁만찬에 초대되었는데 이번에는 잘 생긴 호남들의 모임이었는데
알고보니 모두 北京과 成都등지에서 온 중국 장성출신들이었다.물론 이곳 현장(縣長)도 참석을 하였다.
2일차 저녁 만찬
2016.4.18일 셋째날 불천사(佛泉寺) 대불(大佛) 관광
오늘은 유송림(劉松林) 회장의 특별 배려로 이곳 숙소인 황구위호텔에서 20여 Km 떨어진 대불(大佛)을
보기로 했다.특별히 호텔근무 여직원 두명과 차량 운전을 지원해 주며,대불의 입장료까지 일체의 편의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대불은 세계최대로써 불신(佛身) 본체의 높이만도 108미터로써 그 산정까지 오르는 동안 크나큰 광장들이 몇개나 있다.과히 그 웅장한 규모가 중국인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없는 신기한
모습이다.나는 그 소감을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중국의 삼대 인공 문화산물 셋을 꼽으라면 첫째는 만리장성과 두째로 절강성 이우(義烏)시에 있는 복전
시장(福田商場) 그리고 셋째는 이곳 평정산시의 노산현 요산 (堯山) 불천사(佛泉寺)에 있는 대불(大佛)
일 것이라고라고 답을 하곤 했다.
이 부처의 신체높이만 108미터이다.
이어서 저녁에는 말레이시아 유남휘(劉南輝)님의 자제분들 만찬에 참석하게 됐다.
유남휘님의 자제분들중 이번 행사에는 4남 2녀가 참석을 하였다.
말레이시아 종친들과
2016.4.19 넷째날 유루선조 제삿날
오늘은 유루(劉累) 선조의 제사가 있는 날이다.이곳 유루선조의 제사는 이곳 중국 하남성 평정산시 노산현
소평호풍경구(昭平湖風景區)에 위치한 유루능원(刘累陵園)에서 매년 양력 4월 19일에 올린다.
5년에 한번씩은 대제사이며,기타 매년 4월 19일은 소제사이며 대제사는 2018년 4월 19일에 올리게 된다.
대제사에는 각국 해외 종친들에게도 초청의 절차가 이루어진다.
제사가 끝나면서 평정산 TV에서 한국종친의 래방을 반기면서 TV 방송기자의 취재가 있었다.
중국 텔레비 방송에 출연하는 영광(荣光)도 .....
중국 TV 방송 보도
이렇게 제사 행사가 끝나고 숙소인 황고욕(皇姑浴)호텔 대연회장에서 연회가 있었다.
이렇게 제사의 모든행사를 마치고 유송림(劉松林)회장의 특별배려로 다시 유지봉(劉志峰) 선전부장의
차량을 이용하여 낙양(洛陽)의 용문(龍門) 특급열차역에 도착했다.이어서 우리는 이제 여행을 위하여
500여 Km 떨어진 유명한 당나라,진나라의 고도 서안(西安)으로 향했다.
서안에서는 한(漢)나라의 유적지 장락궁(長樂宮) 유지(遗址)를 비롯하여,서안 성벽(西安城墙),
병마용(兵马俑),양귀비의 화청지(華清池),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 그리고 대안탑(大雁塔)을 보았다.
양귀비의 목욕탕은 온천(溫泉)임을 알게 되었다.지금도 옆에는 온천수가 흐르고 있는 곳이 있었다.
이번 여행기간 우리의 유루선조 제사 참석을 적극 환영하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중국측
유송림(劉松林) 평정산유씨문화연구회장, 평정산 시위(平顶山市委)비서장(秘書长)이자 부회장이신 유전신(劉全新)님그리고 알뜰살뜰 우리의 옆을 지키면서 차량제공등 편의를 아끼지않은 평정산유씨 문화연구회 선전부장인 35세의 젊은 유지봉(劉志峰) 종친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
앞으로 우리 한중(韓中)간의 유씨 종친간의 교류가 더욱더 빈번해지기를 바라면서 이번 2016년 4월 19일 유루선조 제사참가기(劉累先祖祭祀参加记)를 마친다.
중국 섬서성(中国陕西省)서안(西安) 성벽위에서 젊은 신혼 커플의 사진촬영 모습.Cong..Happydays!!
2016.4.16-4.19일 행사후 대연회장 오찬이끝나고 숙소였던 皇姑浴호텔을 떠나면서 한국종친 惜别의 촬영
尋根旅行 後記
1.조상의 땅을 찾는 여행과 목적
이번 유풍종님과 함께 평정산 조상 유루시조 제사 참석과 유전 시조의 고향 맹주방문은 첫째는 매년 양력
4월 19일에 드리는 제사에 참석하고,그 규모와 제사의 상황을 파악키위한 것이었다.
이분들은 우리의 방문을 마치 멀리 떠났던 친형제가 다시 찾아온듯이 진정한 우애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소평호수를 내려다 보는 호수옆 언덕에 위치한 유루 시조님 산소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원래의 유루시조님의 산소는 이곳 소평호 호수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소평호수 그 자리에 있었으나 댐을
축조하면서 산소를 현재의 위치 양지바른 언덕에 옮겨 모셨다고 한다. 전개되는 그 풍광이 한결 아름답다.
2.맹주 유전 도시조님의 고향 방문 목적
맹주의 고향에 가면 옛날 선조의 대를 이을 중국의 상계 족보를 찾아서 우리 한국의 족보와 연접시킬 목적
이었으나 이것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연결작업은 이루어 질 수없는 성질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곳 맹주 종친회장과 함께 방문한 원로 유겸의 종친댁에서 내어주는 족보는 우리 한국의 족보보다도 훨씬 빈약하기 짝이없었다.
우리 유전 시조 할아버지는 중국 당나라때인 서기 782년도에 한반도에 건너 오셨으므로 당시 서기 782년도쯤의 족보가 중국에서 발견되어야 하는데 우리 한국 강릉유씨족보가 첫 발간된것이 서기 1761년 신사보로 볼때에 이곳 중국 맹주종친회에서 내어주는 족보는 이곳맹주땅에 들어온 조상 서기 1729년도 부터의 자기 마을의 시조를 이어써내려온 기록이 있을 뿐이어서전혀 우리의 바라던 서기 782년도의 족보와는 전혀 인연
이 닿지않는다.결국 중국에도 우리가 원하는 족보는
존재하지 않는다.중국 상계 족보를 찾아서 한국 족보와 이어줄 희망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중국에서
구해온 맹주시 제북두촌(孟州市堤北头村) 마을의 맹주유씨 종친회장으로부터 구해서 한국에 가져온 중국족보의 사진을 싣는다.
3.한반도 유전 시조님땅에 유전사당(劉荃祠堂)이 세워지는 날이 오기 를..
한반도 25만 강릉 거창 배천 유씨 시조님의 유전능원(劉荃陵園)을 맹주땅에 세움으로써 마치 그 고장 출신
당나라 대문장가 한유능원(韩愈陵園)처럼 세워져야겠다.그곳 맹주 시정부로써도 한반도의 25만 유씨 시조의 땅으로써의 맹주란 얼마나 자랑스런 일이랴.그리해서 우리 한반도 유씨들이 이곳을 한반도 유씨의 성지
(聖地)로 삼고 정신적 근거를 삼으며 조상의 땅을 찾아 참배하는 귀한 업적을 수립해야겠다.
중국의 성어(成語)에는 이런 말이 있다.“树有根,水有源”나무는 뿌리가 있고,물은 그 근원이 있는법이라고.
맹주시(孟州市) 한유능원(韩愈陵園)
4.평정산 노산현의 유루(劉累) 조상 제각 준공식에는
윤씨(尹氏)가 한국 대표로 참석한 이야기.
2016.4.19일 제사행사에는 여러번의 연회가 있었다.이곳에서는 한국의 윤인종 이라는 분이 열심히 한국
강릉유씨를 연구한다고 해서 의아해 하던중 귀국후 이곳 연회에 참석했던 중국분중에 평정산시 귀국화교
연합회 주석을 맡고있는 사부강(谢富强)씨로부터 SNS 중국 카톡에 해당하는 QQ를 통해서 尹仁鐘씨의
전화번호가 날라 왔다.오늘 윤인중씨를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우리 강릉유씨와 있었던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이분은 사업을 위해서 중국 하남성 평정산시에 5년여간을 살고 있을때인데 마침 인근 노산현 소평호 인근에
온세계 劉氏의 시조가 되시는 유루(劉累)라는 분의 제실을 짓고 준공식을 하는데 세계 각처의 유씨대표들이
모두 오게 되어 있는데 한국유씨 대표들은 전혀 소식도 없어서 한국에 귀국해서 상일동 강릉유씨 대종회를
찾아가서 당시 대종회장님도 만나고 사무국장님도 만나고 애걸을 했으나 당시는 우리나라가 중국을 얕보던
시대라서 아무도 반응이 없어서 중국에 와서 할 수없이 한국 자리만 덩그런히 비워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결국 유씨 대신 윤씨인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았노라고 흘러간 그때를 회상하면서 추억의 한장면을 보였다.
2016.4.26 동대문 매리어트 호텔 인근에서 좌 尹仁鐘 우 劉慶相
孟州市政府的高度反应。
刘氏文化研究会 平顶山刘松林会长
(유씨문화 연구회 평정산시 유송림회장 보내온 글)
대전의 유풍종님과 서울의 유경상 두 사람이 2016.4.19일 중국 하남성 평정산시 노산현 소재 유루(劉累)시조 할아버지 제사에 참배를 하였고 한반도 유씨(劉氏)의 유전(劉荃/原名 劉原甫) 시조님의 고향 맹주
(孟州)를 다녀온 후 2016.6.27일 중국 하남성 평정산
시에 위치한 유씨문화연구회 유송림(劉松林) 회장은
웨이신(微信/Wechat)망을 통해서 아래와 같은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전문과 번역을 올린다.
2016년 6월 27일 刘松林会长이 보내온 맹주시 반응
........................................................
祖地刘松林会长
庆相宗亲你4月寻根拜祖很有成效,引起孟州政府的
高度重视,准备划拨土地建设刘荃祠堂!
我把你们编的书籍已寄的孟州宗亲。
번역
조상의 땅에서 유송림 회장이 보냅니다.
경상 종친,지난 4월 조상의 제사참배 여행은 큰 성과가 있었읍니다.
맹주시(孟州市)에서는 유전(劉荃) 한반도
劉氏 시조가 이곳 맹주가 고향이라는 점에 관하여
이점을 고도 중시해서,맹주시에서는 토지를
내어 사당을 세울 계획입니다.이곳에 보내온 죽간선생 시문집은 이미 맹주시에전달 하였읍니다.
위와 같은 통신을 위챗망을 통해서 전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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