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14 西冰库站-鹭梁津
오늘 오후에는 서빙고역 내려서 동부이촌동 지나서 한강다리 건너서 노들섬 들려보고 노들역 들려서 노량진역까지 걸어갔다.
도중에 한강교 지나 노량진 도착하니 용양봉저정 이라는 제각이 나오고 사육신 묘를 둘러보고 노량진역에서 전철로 귀가.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은
1791년(조선 정조 15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정조가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장조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갈 때, 지금 한강의 한 부분인 노들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쉬기 위하여 행궁(行宮)으로 쓰던 곳이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석단 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목조단청기와집으로 조선 정조가 수원에 있는 현릉원에 행차하는 길에 쉬어가는 곳으로 건조된 것이다.
정조 13년에 아버지 장조의 무덤인 영우원을 화산 수원으로 옮겨 현릉원이라 했는데 정조는 자주 이 현릉원에 행행했다
가마를 타고 한강 주교를 건넌 정조는 이 용양봉저정에서 잠시 머물러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들곤했다. 서정소라고도 불렸던 이곳에는 당시 노들강(한강)에 배다리를 놓는 일을 하는 주교사와 주교대장도 있었다.
이 건물은 견실하고 단아한 정조 대의 행국건축으로 주위에는 일부 건물의 기단부와 주초석이 아직도 남아있어 당초에는 정문과 두어채의 다른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간통 단층인 이 용양봉저정은 온돌구조로 견실하게 지어졌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후부터 중앙대학교 부속여자고등학교와 보호결연을 맺어 학생들이 문화재 주위를 청소해 오고 있다.[1]
현륭원은 현재의 융릉이다.
영우원(永祐園)
1762년 (영조 38년) 윤 5월 21일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서 숨을 거두자 영조는 양주(楊州) 땅 남쪽
중량포(中梁浦) 옆 배봉산(拜峰山) 자락에 묻도록 한다.
임금과 왕비 무덤은 ‘능(陵)’이고 그 이하는 ‘능’을 붙일 수 없었다.
사도세자 무덤을 처음 배봉산 밑에 쓸 때는 수은묘 (垂恩墓)라고 했다.
그러다가 14년 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원(園)으로 승격시켜
영우원(永祐園)으로 부르게 되었다.
융릉
융릉(隆陵)은
조선 정조의 아버지이자 사도세자로 알려진 조선 장조(莊祖, 1735년~1762년)와 혜경궁 홍씨로 널리 알려진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 1735년~1815년)가 함께 모셔진 능이다.
본래 사도세자의 묘는 원래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현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기슭에 수은묘(垂恩墓)로 있었으나 왕위에 오른 정조가 사도세자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추숭하고 난 뒤, 묘를 영우원(永祐園)으로 높였으나 묘지 이장을 준비하고 곧 그의 지시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이름붙였으며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죽은 후 그 곁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1899년 대한제국 고종은 왕계 혈통상 고조부인 장헌세자를 장조로 추숭하면서 현륭원이란 명칭도 융릉으로 격상시켰다.
驤:머리들 양/1. 머리를 들다 2. 뛰다 3. 달리다 4. 빠르다 5. 오른쪽 뒷발이 흰 말
翥:날아오를 저/1. 날아오르다 2. 날아올라 가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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