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刘/2012.5.18刘邦节

중국 패현 제 9회 유방문화제 참가기(2012.5.18)

송화강 2014. 11. 20. 16:45

                   中國 劉邦文化祭 다녀오다.

 

                                                                                           劉  慶  相

 

인류는 왜 아득한 선조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우리 한반도 유씨(劉氏)의 선조 되시는 유방(劉邦)은 어떠한 분일까.

우리 강릉유씨 대종회에서는 금년 중국 강소성 패현(沛縣)에서 열리는

 제 9회 유방문화제에 25명의 한국 대표단을 선정하여 2012.5.17-5.20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이번 이러한 중국 유방문화제 참석은

처음 시도된 것이며 이제 우리의 중국 선조(先祖) 상계(上系)를 찾는

 중요한 행사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한반도에 거주하는 유전(劉荃) 도시조(都始祖)의 후예들이 중국의

 선조를 찾아서 劉邦의 후예라고 하게 된 것은 서기 1845년(이조 헌종 11년)

중국의 사신으로 갔던 윤찬(尹璨)씨가 유씨 상계의 판각본(板刻本)을 갖고

온 이후의 일로써 최근(近世) 의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조의 연원(淵源)과 행적(行蹟)에 관한 글을 쓸 때면

정결한 마음 가짐으로 한자 한자를 정서(正書)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考證이란 바로 正直이다.

 

후인들이 선조의 글을 읽고 신빙성을 부여하려 하기 때문이다.더우기

사실(事實)을 미화 과장해서 순수했던 일개 평민(平民) 백성을 누대(累代)에

걸쳐 미화(美化)시켜 "정승 벼슬을 한 선조"로 높여 놓았다고 할 때

양식(良識)있는 후손들이 즐거워 하겠는가.

 

없으면 없는대로 진리 앞에 아름다운 그 기개(氣槪)가 곧 최고의 가치(價値)인 것을!

 

 

 

 

 세계유씨 총회회관 (世界劉氏總會會館) 앞에서 한국 대표단 기념촬영하다.   2012.5.18 아침

 

 

1.중국 유방문화제 참석 추진 과정

 

나는 중국의 인테넷 망에 들어가서 선조에 관한 기록이나 기사를 찾아 볼 때

 중국 사회가 족보와 종친회(宗親會)를 통해서 매우 활발하면서도 씨족간

돈독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음을 보게 되었고 이 때마다 나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는 "중국은 모택동 문화 대혁명 때에 족보는 모두 불사르고

문화제는 훼파(毁破)되어 아무것도 없다"라는 현실에 한없이 괴리된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을 접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처연(悽然)할 뿐이었다.

 

이번에 우리 강릉유씨 대종회장이신 유길종(劉吉鐘) 회장님께서 문중의

대임(大任)을 맡으시고 우리 강릉유씨 종보 제 4호 유맥(劉脈)을 발간 하신데

이어 바로 중국의 상계 찾기 일원인 중국 유방문화제 참석을 결정 실행하신

것은 대단한 치적(治積)이 됨이 분명하다.

 

회장님께서는 저에게 발의는 해 놓고 전혀 인원 선정을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人心)이란 매우 미묘한 속성이 있어서 누구나

 함께 중국 여행길에 가기를 요청한다고 선뜻 응할 리(理)도 없는 것이다.

 

회장님께서는 특유의 덕망과 친화력으로 무난히 25명의 대표단을 구성 하셨을

뿐만 아니라 선정 이후에도 계속 全國 각처의 여러분으로부터 함께 갈 것을

요청 받았지만 여러 가지 항공편 및 인원 통솔상의 문제로 더 이상 접수할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제 9회 중국 유방문화제 한국 대표단 제사 장소 상단(上壇) 모습

 

2. 드디어 중국 제남(濟南)행 비행기에 오르다.

 

2012.5.17일 아침 11시 45분 중국 국제항공 CA 4096편 비행기에 오르는 날이다.

 

아침 09시 15분까지 인천 국제 공항 3층 카운타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어 이른

시간이고 또 멀리 전국에서 오시기에 불편할 것을 걱정 했으나 한분도 착오

 없이 정시에 모두 집합을 하였다.곧이어 탑승을 마치자 정시에 이륙한 제남행

항공기는 1시간 35분후인 현지시간 12시 20분 제남 공항에 착륙했다.

나는 수없이 산동반도를 다녔지만 제남은 처음이어서 일종의 흥분된 마음이 있었다.

 

간단한 기내식이 있었지만 도착 하자마자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흑룡강 출신

 가이드의 인도하에 가까운 곳에 있는 제남(濟南) 단정학(丹頂鶴)이라는 중국

식당에서 중국 요리와 유명한 청도맥주(靑島麥酒)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로

중국에서의 첫 식사를 마쳤다.

 

그럼 우리가 찾아 나서는 유방(劉邦)이란 선조는 어느 시대 어떠한 분인가를 잠시 보자.

출생은 기원전 즉 BC 256년 12월 28일 출생하여 55세 되시던 BC 202년

 한나라를 세우고 BC 195년 62세에 사망하셨으며 중국 강소성 풍현

중양리(中陽里)에서 태어났다.

 

한고조 유방과 같은 패현 풍읍 출신의 공신들 가운데는 소하(蕭何),

조참(曹參), 주발(周勃), 노관(盧綰), 번쾌(樊噲), 하후영(夏后嬰),

 주창(周昌) 등이 있다.진(秦)나라때 이미 패현의 사수정(泗水亭)의

 

정장(亭長)을 하고 있었으며 기병(起兵)후 패공(沛公)이라는 명칭을

얻고 진나라가 망하자 한왕(漢王)에 봉(封)해졌고 초한(楚漢) 전쟁을

통하여 초패왕(西楚霸王) 항우(项羽)를 물리친후 한조(漢朝)

 서한(西漢)을 개국하여 황제가 되었다.

 

 

 

2012.5.18일 아침 패현 한성공원(漢城公園) 유방사당으로 제사행사차 시가 행진 이동중

 

3.매우 편안한 중국 운전기사와 함께 미산호(微山湖水)를 돌다.

 

제남의 단정학(丹頂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하나투어 청도

사업소 관할 제남 사업장에서 제공된 버스 편으로 제남을 떠나 이제

유방(劉邦) 문화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 강소성(江蘇省) 패현(沛縣)을

향해 힘차게 출발을 하였다.

 

도중에 곡부(曲阜) 휴게소에서 잠시 쉰후 이제는 고속도로를 떠나

시골길을 달리기도 하고 또는 시골의 시장 골목을 우리 버스가 통과

하기도 하고 하면서 운전수는 말없이 잘도 찿아 가고 있었다.이제

 

패현(沛縣)이란 곳을 찾아 가는데 이곳은 모택동이 1949년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 전까지는 산동성(山東省)이었던

곳으로써 강소성이긴 해도 산동성과는 미산호(微山湖)라는

큰 호수를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 미산호수는 서울 면적의 2배가 넘는 면적의 1266Km²로써

 기다란 마(山藥)처럼 생겼으며 그 호수의 길이가 서울-대전간의

거리와 같은 120Km나 된다.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호수이다.

 

이러한 120Km 길이의 호수를 건너가는 다리는 단 한곳 밖에 없는데

바로 그곳을 이 운전수가 중국의 마을과 시장통과 비포장

 흙먼지길을 더듬으며 이곳에 잘도 찾아 도달한 것이었다.

 

 이 기다란 호수에 단 하나의 건널 수 있는 곳 바로 이지점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 밖에 없는 그 다리를 건너기 위해 게이트를

들어 섯을 때에 다리가 공사중이어서 버스는 통행이 금지됩니다.

이런 팻말과 복무원(服務員)의 제지었다.

 

이제 이 다리만 건너면 바로 패현(沛懸)인데 이 산마(山藥) 같이

생긴 이 길게도 생긴 호수를 남하해서 다시 올라가야만 패현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다시 흙먼지 길을 달려서 당초 저녁 6시 30분쯤에

 도착 예정이던 그 길을 120여 Km를 더 돌아 현지시간 9시3분에야

 겨우 숙소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관광버스 기사였다면 아마도 한 참을 불평하고도 남았을

 그 길을 중국 운전사는 물론 늘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 왔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불평 한마디 없이 꿋꿋하게 잘도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 이 또한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미산호(微山湖)는 아시아에서 가장큰 연꽃 호수로 유명하며매년 5월에서

10월까지 연꽃이 만발한다. 매년 가장 꽃이

많이 피는 7,8월에 연꽃 축제가 열린다연꽃이 피는 면적은 자그마치 200만평에 이른다

 

 

 

나는 미산호(微山湖)를 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미산호를 반바퀴 120Km를

돌면서 그 상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샘이다.그 바람에 그 마(山藥)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에 위치한 강소성(江蘇省) 서주(徐州)라는 큰 도시 부근을 한 바퀴 돈 샘이다.

 

미산호(微山湖)를 두고 많은 시인이 노래한 바있지만 이 미산호수

가운데는 9Km² 면적의 미산도(微山島)라는 섬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나서 자라난 은중례(殷重礼) 시인(詩人)의 시를 한 수 소개하고저 한다.

 

일찌기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는 1684년에 이곳 미산호(微山湖)를

 찾았을 때에 은중례 시인을 산중재상(山中帝相) 이라고 칭한바 있다.

 

 

 

 

一蓑一笠一孤舟 외로운 배한척에 도롱이와 삿갓쓰고,

丈长竿一寸钩。 긴 장대에 낚시 하나 매어 놓고

曲一歌一樽酒, 술 한통 놓고 노래 한 수 부를 때에

一人独钓一江秋。 나 홀로 江秋를 낚네.

 

 

유방 선조 참배단(參拜團) 2012.5.17일 사상 처음 패현에 도착 하다.

 

잠시 패현(沛縣)이란 어떠한 곳인가를 알아 보자.

 

중국에는 23개의 성(省)이 있고 이곳 강소성(江蘇省)은 그중 한 개의

 성이며 그 북부에 위치한 서주시(徐州市) 관할에는 2개의 현이

 있는데 바로 이곳 패현과 유방 선조가 태어난 풍현이다. 패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군(郡) 2개를 합친 정도 크기의 1349Km²이며

현(縣)전체인구는 125만명이지만 패현 시내만의 인구는 20만인 중소도시이다.

 

유방 선조는 옆에 인접해 있는 풍현(豊縣)에서 탄생하시어 소년 시절에

이곳 패현으로 옮겨 오셔서 조그만 정장(亭長)이라는 직책을

 하시다가 군사를 일으켜 한(漢) 나라는 이곳 패현에서 이루셨으므로

 이곳 패현 인민 정부에서는 격년 마다 성대한 유방 문화제를 개최한다.

 

 

 

이번 패현 유방문화제는 중국 강소성 패현 인민정부(人民政府) 주관으로

 2012.5.17일부터 5월20일까지 현정부(縣政府) 차원의 투자유치단을

초빙하는 상무(商務) 행사와 함께 이루어진다.하나뿐인 4성급

 

호텔인 한원빈관(漢原賓館)은 그곳 현 인민정부 상무(商務) 행사장으로

사용되므로 이곳 한성공원에 가까운 연산반점(燕山飯店)으로 숙소를 정하게 됬다.

 

4. 5월 18일 최초로 한국 후손이 제사(祭祀) 드리다.

 

 

 

저녁에 이곳 패현(沛縣) 종친회장 유소유(劉紹儒)씨가 찾아 왔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의 유소유 종친회장은 우리를

반가히 맞아 주면서 함께 기념 촬영도 했으며 내일 행사에 참여할 문제에

 

 관하여 안내하고 노란 목도리 28장을 전해 왔는데 이것이 행사장

 출입 비표용(秘票用)이라고 한다.

유방문화제는 2년마다 이곳 패현 인민정부 주최로 열리는

격년례 행사로써 금년 2012년도 5월 18일 행사는 제 9회가 된다.

 

 

劉吉鐘 會長 사모님과 中國 廣西省 劉氏宗親會 副會長

 

패현 인민 정부 주최의 행사인 만큼 패현 한성공원(漢城公園) 내의

유방 사당(劉邦原廟)에서 열리는 유방제사(劉邦祭祀) 행사도 유씨

 문중 행사가 아니고 현정부(縣政府) 행사이며 유씨문중에서는

 

 의전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분적으로 담당할 뿐이다.우리는 시간

관계상 참석 할 수 없었지만 저녁에는 이곳 패현의 제 4중(第四中學校)

교정에서 패현 시민을 위한 야간 무대가 아주 성대히 펼쳐졌다.

 

원래 우리는 패현 한성공원의 유방 선조의 사당에서 제사행사를 마치면

 오후 한시에 세계유씨 총회회관(世界劉氏總會會館)을 들리기로 계획

 됐었지만 한성공원 유방사당에서 제사 행사에 참석할 모든 사람들이

 

 아침 8시부터 이곳 세계유씨총회 회관을 집합장소로 해서 모였기 때문에

자연히 이곳 세계유씨 총회회관을 외부에나마 보게 된 결과가 되었다.

 

이곳에서 많은 사진을 촬영했는데 우리는 회장님께서 미리 준비해 갖고

 간 현수막 "제 9회 유방문화제 및 세계 유씨대회 한국대표단

(第九回 劉邦文化祭 및 世界劉氏大會 韓國代表團)"을 펴고 중국

각지에서 온 종친들과 기념촬영을 할 때 단연 인기였다.

 

모두 사진 촬영을 마치고 청홍황색(靑紅黃色)의 중국 전통 제례(傳統祭禮)

복장을 갖춘 대열이 고적대(鼓笛隊)와 함께 패현 시내 중심가를 한 시간여

 도보 행진을 할 때에 시민들은 도로 연변을 장식했다.

 

 

 

한성공원(漢城公園) 유방사당의 제사 행사장에 입장 했을

 때는 이미 현 정부에서 준비한 피켓중 한국 대표단의 피켓이

 중국 각 성에서온 제례단에 앞서서 제 1번으로 배려되 있어

일찍이 한국 대표단이 제례(祭禮)를 올릴 수있었다.

 

금년 재례 방식은 가정 제례방식을 택한다고 했는데 중국의 제례 방식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식견은 없으나 일견 보기에 장중하고 또 아름답기도

한 제례(祭禮) 정경(情景)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우리 한국의 유방 선조 후예들이 이번 중국의 선조 땅에 와서

공식적으로 올리는 첫 제례행사는 너무나도 뜻 깊은 행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 풍현(豊縣) "한황조능원(漢皇祖陵園)"에서 참배하다.

 

 

풍현의 한황조 능원에서 처음으로 선조께 제를 올리다. 흑룡강 출신 최상화(35세)가이드

패현의 유방 사당에서 제사를 마친후 유방 선조가 태어나서 자라난 풍현(豊縣)을 향했다.

 산도 하나없이 밀밭만이 펼쳐진 들판 가운데로 난 도로를 한시간여 달려

 풍현시내에 도착하니 12시 반쯤 되었다.

 

한황조 능원에는 오후 세시에서 오후 다섯시 사이 방문키로 통보해

 놨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우선 현지 식당에서

우리 대표단은 점심 식사를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시간은 오후 2시 한황조 능원에 전화로 일정이 한 시간

 앞당겨 짐을 통보하고 바로 능원(陵園)에 도착하니 온 마을 유씨

집성촌 일가 종친들과 유항심(劉恒心) 종장(宗長)이 꼭 친형제를 만난 듯이 반가워 한다.

시골 동네 마을 인데 95%가 우리 유씨라고 한다.

 

유항심(劉恒心) 종장(宗長)과 우리 유길종(劉吉鐘) 회장님은

각각 그곳 한리당 족보(漢裏堂族譜)와 우리가 갖고 간 종보(宗報)

유맥(劉脈)을 각각 교환하는 증정식(贈呈式)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중국 각지에서 온 종친들로 붐볐는데 그중에는 산동성(山東省) 종친회장과

 하남성(河南省) 종친회장도 있었으며 멀리 광서성(廣西省)에서 오신

 미모의 광서성(廣西省) 종친회 여부회장도 있었다.

 

 

 

이곳 한황조 릉원이 있는 중국 강소성 조장진 김유채촌(中國江蘇省趙莊鎭金劉寨村)의

 마을 이름은 사연이 있다.이곳 한황조 능원 내에는 한기의 분묘(墳墓)가 모셔져

 있는데 바로 유방 선조의 증조부(曾祖父) 되시는 유청(劉淸) 선조의

 산소(山所)이다.이 마을 개척자이다.

 

유방 선조의 생년은 기원전 256년이며 이를 근거로 증조부의

생년대를 역산하면 BC 340년쯤 될 것이다. 춘추 전국 시대중

 전국(戰國) 시대에 해당하는 년대로써 유청(劉淸) 선조는 당시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에서 관리를 지내던중전란으로

이곳으로 피난와서 몸을 숨겨 성을 묘금도유(劉) 자(字)중에서 가운데

핵심되는 쇠금(金)변을 취하여 김씨로 살다가 이제 세상이 좀 조용해지자

 

 다시 유씨성을 찾아서 살았으므로 처음의 마을 이름이 김채촌(金寨村)에서 이제

 김유채촌(金劉寨村)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中華劉氏 宗親會 會長 劉恒心 宗長(中央)

 

 

어느 종친도 차중에서 "다 쓰러져가는 사당을 보면서" 라고 소회를 예기하는 것을 들었지만

이곳 한황조 능원의 관리 상태는 듣던 것보다는 열악한 편이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중국의 실상(實相)이다. 세계 제일의 외환 보유국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이러한 시골까지는 개발의 기운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섭게 발전하는 중국이다.

 

6.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강태공의 후손이다.

 

가. 산동성(山東省) 임치(臨淄)는 옛날 강태공(姜太公)이 세운 제(齊)나라의

수도(首都)이다. 임치에는 매년 강태공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중국에

 있는 후손은 물론 한국 대만 동남아등 각국에서 참석한다. 姜,邱,盧氏 모두 강태공의 후손들이다.

 

강태공의 8대에 이르러 盧氏의 姓을 하사(下賜) 받는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이

 산동성 부성장(副省長)에게 "나는 강태공의 후손이다"라고 말하자 방문하기를

부탁하여 2000.6.18일 강태공 사당을 참배하고 "선조의 뜻을 계승하자"라는 글을 남겼다.

 

 

 

나.평택임씨(平澤林氏)네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동령진(東嶺鎭) 팽성촌(彭城村)을

 왕래한다.평택임씨 한국 도시조 임팔급(林八及)은 우리 강릉유씨 도시조이신

유전(劉荃)선조와 함께 동도(東渡)해오신 팔학사(八學士)의 한분이지만 우리가 1082년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에 (고려 문종 36년에 해당) 동도설을 주장하는 반면

 

그들은 당나라(中國唐朝) 때인 AD 870년 설을 주장하면서 복건성 혜안현(惠安縣)

동령진 팽성촌에 한글비와 중국어비(中國語石碑) 2개를 세워놓고 1995년 이래 최근

2011.11.22일 임씨 종친회장 임도수(林都洙)를 단장으로 하는 24명의 참배단이 제 9회차 방문한 바 있다.

 

한국 평택 林氏....중국 복건성 혜안현(惠安縣) 동령진 팽성촌에 한글/한문 두 개 비석 세움

 

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가락 종친회 印度에 許黃玉 김수로왕비(王妃) 비석세우다.

 

가야국 김수로왕 왕비 허황후(許黃玉皇后)는 인도 간지스강가의 아요디아(Ayodhya)

 읍에서 왔다는 설과 중국 사천성(四川省) 가릉강(嘉陵江) 유역의 보주(普州)가

 바로 아유타야라는 설도 있고 하다.나는 몇 년전에 김해시의 수장(首長)이 허황후

 

루트를 찾기위해 사천성을 방문했다는 신문기사를 중국 신문에서 직접 읽은 적이 있다.

한편 김해김씨(金海金氏) 가락(伽洛) 종친회에서는 2001.3.6일 인도의 아요디아(Ayodhya) 를

 찾아 許黃玉 김수로왕비(王妃) 시조 할머니의 기념비를 세운바 있다.

 

라.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의 조상은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당선 됐을 때 중국 반씨 종친회에서 축하 편지를 보냈으며

반총장도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고 한다.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

중국에서 뜨는 도시가 있다.중국의 허난(河南)성 싱양(滎陽)시 가오산(高山)진(鎭)으로,

 반씨의 집성촌이다.

 

반씨 촌민들은 반 사무총장이 먼 친척이자 1천700년 전 한 가족이었다면서

반씨 집안의 족보를 들이밀었고 인터넷상에서 이런 소식이 널리 전파되면서

 중국 언론들이 앞다퉈 반씨 집성촌을 찾아가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싱양을 찾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7.공자(孔子)의 고장 곡부(曲阜)에 드디어 도착하다.

 

 

2012.5.19 아침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궐리빈사(闕里賓舍) 앞에서 공부(孔府) 입장출발

 

나는 오랜만에 다시 곡부(曲阜) 땅에 발을 들여 놓은 샘이다.

 

오래전 청도(靑島)의 한 학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던중 주말을

이용해서 나는 당시의 실로 척박한 교통 풍토 속에서 근 이틀을 걸려서

 이곳 곡부에 도착해서 공자의 공림(孔林)과 태산(泰山)을 걸어 올라가

 

일몰이 가까워 옴으로써 황혼에 쫓긴 모습으로 태산의 그 많은 계

단과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추억이 있던 곳인데 오랜만에 다시 이곳에 왔다.

 

곡부(曲阜)의 궐리(闕里) 마을 이름을 따서 궐리빈사(闕里賓舍)라고

 이름 붙인 이곳 4성급 권리빈사에 투숙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이 호텔에서 전통 혼례식의 모습도 볼 수있었다.

 

오늘은 공묘(孔廟) 맹묘(孟廟) 태산(泰山)을 모두 봐야 하기 때문에

아침 8시에 나서서 우선 공묘를 보기로 했다.많은 귀중한 공자님의

귀중한 인류 문화유산이 철부지 홍위병(紅衛兵)들의 난동에 파손된

 

 것들을 다시 짜맞추어 접합시켜 놓은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와 인간의 무지가 얼마나 역사를 후퇴시키는가를 생각해 봤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나 캄보디아의 폴 포트 같은 역사의

이단자(異端者)들도 마찬가지다.

아! 또 생각난다.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질렀던 진시황(秦始皇)도 있네.....

바로 이 진(秦)나라를 이어 받아 유방(劉邦) 선조는 한(漢)나라를 세웠다네...!

 

 

맹묘(孟廟) 령성문(櫺,棂 ,欞星門) 앞에서 우리 한국 강릉유씨 대표단 기념 촬영을 하다.

 

櫺星門(령성문)의 뜻은 문성(文星)이란 별자리에서 따온 것으로써 文星

즉 전설가운데 文學을 관리하는 별이라고 한다.天下의 文人 學士가 모여

 學文을 연마(練磨)하는 곳이란다.

맹묘(孟廟)를 향하여 달렸다.

 

맹묘는 공묘(孔廟)에 비하면 작고 아담했다.태산을 봐야 하므로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했다.

"道闡尼山" 이 네 글자가 청(淸)나라 건륭황제(乾隆皇帝)의 필적

마크를 달고 늠름하게 걸려 있었다. 맹묘 령성문(櫺,棂 ,欞星門)

앞에서 기념사진 찍다.

 

맹자를 가르친 스승은 맹자 어머니 장(仉)씨이다.

이미 우리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나 맹자가 공부를

중도에 어머니가 보고 싶어 돌아 왔을 때에 짜던 베틀의 베를

자르고 중도에 온 아들을 엄히 훈계한 단기지훈(斷機之訓)은

이미 모두 잘 알고 있는 맹모고사이다.

 

買肉啖子<돼지고기 사 먹인 예기>도 있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는 것을 보고 맹자는 어머니께 물었다..

돼지를 잡던데 누구에게 줄려고 잡는 거지요? 너에게

줄려고 그런단다...맹자는 돼지고기를 먹을 생각에 매우 좋아 했는데...

 

사실 어머니가 부질없는 농담을 한 것 이었다 후회막급 이다.

실망할 맹자를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결국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사다가 정성껏 요리해서 맹자에게 먹였다.

 그날부터 절대로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맹모는

무심코 던진 농담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을 졌고 그날부터 절대로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곧장 달려서 태안(泰安)의 태산 국제반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한시 반이었다.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장 또 한참을

 달려서 태산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는 매우 많은 량(輛)이 운행되고 있었으며

중국인의 큰 돈벌이가 되고 있었다.

 

예전에 큰 고생하면서 걸어서 올라 왔다가 일몰 시간이 촉박하여

 석양(夕陽)에 계단을 달려 내려오던 그 절박한 순간 몸으로 견뎌낸

옛 추억이 있기 때문인지 이번엔 무덤덤했으니 혹시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흐른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제남에서 하룻밤만 자면 새벽 8:20분발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시내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제남의 귀우대주점(貴友大酒店)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에는 수박을 사다 호텔에서 잘라 먹었다.

 

 

 

2012.5.19泰山 西神門 앞에서 劉永春 제주 지회장,劉吉鐘 회장님,劉永植 경북지회 이사의 모습

 

수박은 한 근에 2元씩 했으며 수박 한 덩이는 10근쯤 됨으로써

 우리 돈 4,000원쯤 되었다.나는 수박 하나에 2元(우리 돈 400원)인줄

알았던 해프닝도 있었으나 맛은 참 좋았다.중국의 모든 과일은 근으로 달아서 계산한다.

 

2012.5.20일 중국의 유방문화제 행사 참석을 잘 마치고 제남 공항을

08:20분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에 11:05분 안착 귀국함으로써

 이번 여행은 마쳤다.

 

한 시간도 빈틈이 없는 꽉 찬 스케쥴의 여행이었으며 꽤

 고달픈 여행길이었으나 고달프고힘든 여행이었던 만치

오래 오래 기억에도 남는 여행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8. 이제 晋州 姜氏 중앙회 강태공 사당 참배 예기나 하자.

 

 

 

우리 강릉유씨 종친회가 이번 중국 유방 문화제에 첫발을 들여

놓았지만 진주 강씨 중앙회에서는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임치(臨淄)의

 강태공 선조의 사당 제사에 대규모 참배단을 보내고 있다.

강태공 예기부터 해보자.

 

우리가 흔히 낚시꾼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강태공은 그의 본명이

강여상(姜呂尙)이다.그는 자기를 알아 주는 제후를 만나지 못하고

 몇십년 동안 방랑 생활로 세월을 보내다가 팔순에 가까이 되어서 주나라

 

 도성 근방의 큰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렸는데 마침

인재를 구하려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으로 재상이 되어서

산동성 치박시(淄博市)의 동쪽 땅을 받아 제(齊)나라를 세웠다.

 

진주 강씨 중앙회에서는 2004년 9월 16일 제 1회 제(齊)문화 국제 관광

 축제에 150명의 대표단을 참가시킨 이래 매년 9월12일 열리는

 강태공 탄신제례에 대표단을 파견한다.

 

2010년 3149주년 탄신제례에는 140명을

2011년 9월 탄신제례에는 7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같은 강태공 후손인 한국 평해(平海) 구(丘,邱)씨 대종친회에서도

이곳 중국에 1997년 10월 구목공(丘穆公) 추모비를 세운바 있다.

한국의 진주강씨(晋州姜氏)와 평해구씨(平海丘氏) 광산 노씨(光山盧氏)는

 모두 강태공을 선조로 두고 있다.

 

9.중국은 지금 몇시인가.

 

 

 

 

 

1983년 5월 중국 민항기가 춘천의 미군 기지에 불시착한 사건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당시 까지는 중국을 죽(竹)의 장막이라고 해서 마치 외계인이 이 땅에 왔듯이

 크나큰 뉴스였는데 그후 1992년 8월 24일 노태우 대통령 당시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이루어진지 이제 금년 2012년이

 그 20주년이 되는 해이며 지금의 한중 교역량이나 인적 교류는 지금 눈부시다.

 

중국의 기나긴 농업 문명사회와 곧이는 100여년간의 외제 침탈

수난의 시대를 이제 통과해서 21세기의 찬란한 세계 문명에

합류하기 시작했으며 그 변화의 속도가 가히 눈부시다.

 

중국은 현재 두 개의 얼굴을 갖었다.

북경 상해 및 홍콩과 광저우를 비롯한 남방 지역의 발전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전국의 지방도시도 물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아직은

그 열기가 윗목까지는 도달하기 전이어서 농촌지역은 아직도

 원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 한 체 살고 있는 곳이 많다.

이것으로 오판해서는 안된다.

 

역사의 지평선을 멀리 조감해 본다면 무한한 발전 잠재력이

그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이번 중국 패현의 유방 선조의 발자취를

 탐방하고 왔지만 우리는 중국의 농촌지역을 다녀 온 것이며 따라서

 발전하는 중국의 진면목을 볼 기회가 없었다.

 

앞으로 중국이라는 무대는 그것이 어떠한 모습을 펼치든간에

그것은 중국인만의 것이 아닌 세계사의 무대이며 곧 한국인의

 진취적 무대가 될 것이다.언어와 문자의 연관성과

 

그 지정학적 위치를 본다면 우리 한민족에게는

 무한한 동질적(同質的) 낭만(浪漫)의 장이 될것이다.

 

21세기는 모든 분야의 기획(企劃)이 인터넷에서 이루어 지고 있으며

 중국의 인터넷의 발전 속도는 하늘을 난다. 그 검색(檢索)의 범위나

 정보량(精報量)의 풍부함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4~5년 까지도 중국 인터넷은 느려서 부팅이 잘 안될 정도였으나

지금 세계 최첨단의 능력을 자랑한다.

불과 몇년 사이의 일이다.

 

중국은 현재 첨단과 낙후의 양면을 지니고 있지만 역사는

항상 굴곡은 있어도 발전해 왔다. 현재 중국은 전국이 재개발 중이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 시대와도 같다고나 할까.

 

하루 속히 그들이 바보라고 생각해 왔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인은 영민하다.

 

10.현지 보도 모음

 

【沛县刘邦文化节】 海内外刘氏宗亲参加祭祀大会_徐州吧_百度贴吧

 

江蘇省徐州網:http://tieba.baidu.com/f?kz=1597647751

河南省文化産業網:http://news.henanci.com/Pages/2012/05/19/20120519100423.shtml

鳳皇網:http://culture.ifeng.com/gundong/detail_2012_05/18/14646010_0.shtml

江蘇省新聞網:http://www.js.chinanews.com/news/2012/0518/39546.html

百度網:http://hi.baidu.com/xunz9667ele8/blog/item/18862cf4567efd366c22ebc5.html

 

中新江苏网徐州5月18日电 5月18日上午9时58分

汉高祖皇帝祭祀典礼在江苏沛县汉高祖原庙举行。来自韩国、日本、

香港特别行政区的刘氏宗亲代表团和来自中国大陆20个省份500余人

相聚江苏沛县歌风台下,高祖庙前,隆重的拜祭汉高祖刘邦大典。

 

  韩国江陵刘氏大宗会会长刘吉钟先生,从老人家的精气神状态看

怎么也不能相信他已经是81岁高龄了。在翻译的帮组下,刘老先生介绍,

目前韩国刘氏居民有25万之多,每年都有大大小小的汉文化祭祖活动,

 

在异国他乡遥祭先祖刘邦。从1082年起,宋神宗时代兵部尚书刘荃

就开始带了一批刘氏人来韩国生活。目前,我们的先祖所创立的大汉基业

依然影响着我们这个世界文明。我们愿意在韩国和中国之间架起中韩友谊桥梁,

愿中韩世代友好

 

-중국 강소성 매체 서주(徐州)발 5월 18일 오전 9시 58분 보도-<번역문>

한고조 황제 제사 대전이 강소성 패현의 한고조 사당에서 거행됐다.

한국,일본,홍콩특별행정구에서온 유씨 종친대표단 및 중국 대륙

 20개성에서온 500여명이 강소성 패현의 가풍대 앞유방 사당에서

함께 모여 륭중한 한고조 유방 제사를 드렸다.

 

한국의 강릉유씨 대종회 회장이신 유길종(劉吉鐘) 회장께서는 노인의 원기치고는

 믿을 수 없었으나 벌써 81세라고 하신다.통역 도움으로 유회장님을 소개받다.

현재 한국의 劉氏는 25만여명이며 매년 크고 작은 한문화(漢文化) 조상 제사

 

행사로 멀리 타국의 유방 조상을 제사 드린다고 한다.서기 1082년에 송나라

신종(神宗) 시대에 병부상서를 지내신 유전(劉荃)

 

 선조가 일단의 유씨를 데리고 한국에와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대에 우리의 선조가 세우신 한(漢)나라의 위업(偉業)이 의연하게

우리 세계의 문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우리는 중한 양국의 우호에

있어 교량의 역할과 함께 중한 양국간 우의가 증진되길 바란다.

 

11.처음 中國의 劉邦文化祭에 한국대표 팀으로 참석 하고나서

  

泰山 케이블카 아랫 풍경

 

이번 여행은 참으로 어려운 출발이었다.

 

아무도 이러한 여행을 해 본적이 없는 처음 가는 길인 것 이었다.

여행비용도 만만찮아서 걱정했지만 회장님의 부단한 노력으로

 많은 종친들이 참석을 해 주셨고 또 회장님께서는

 

100 여만원이 넘는 성금을 내시어 이번 여행길에 각종 이름 없는

 뒷 경비를 하나하나 메꾸어 주셨다.특별히 회장 사모님께서는

전 일정의 여행 과정을 통하여 어디에 두셨다 내 오시는지 끊임없이

다과를 돌려 주셔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특별히 곡부(曲阜)에서는 호텔에서 식사후에 회장님께서는 일인당

거금 30,000원씩이나 하는 발맛사지(足療)를 시켜 주셨는데 회장님께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일면 감사 하면서도 또 한편 매우 송구스러웠는데

 

 이런 경우 이미 상황을 일찍 파악한 원로 몇분은 이번 족료( 足療)행사에

 불참하셨으니 처세의 달인이면 달인 이라구 할 수있을지도 하하...........

 

이렇게 말도 많고 어렵기도 하고 또 한편 예측불허의 이번 중국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지나간 일이 되긴 했지만 무리하게 시행했다가 갑자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염려도 있었지만 종친 여러분들의

 현명하신 협조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은 참으로 경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종친들의 그 열정적이고 외지에 나갔던 형제를 반기는 듯

 그 환영의 모습 아름다웠다.

 

특별히 우리 이번 여행의 최고 어른 되시는 유상종(劉商鍾) 고문(顧問)님께서는

 우리들보다도 더욱 건강하신 모습으로 높은 태산까지도 힘차게 오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처음 가는 중국선조 참배 길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비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시작이 이제 영원히 이어질 중국 상계(上系) 찾기의

 고귀한 목표에 새로운 이정표(里程標)가 되기를 바란다.

 

白凡 金九 선생의 시를 올리며 마치기로 한다.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에

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지니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마침내 後人의 里程標 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