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농군학교 -경기도 양평 지제면으로 이전중
김용기 장로님 다시 뵙고싶다.
이곳이 젊은날 입소 교육받던 농군학교 교정이다.
이제 입구에는 농군학교 팻말만이 덩그런히 남아있다.
이제 지제면으로 이사중이며 곧 이사가 완료되면 아파트 단지로 변한다고
앞의 아파트는 서울시 천호동 강일지구 신개발 현재 미입주 아파트군이다.
정문앞은 공사 사전에 이미 파 공사가 임박
주변은 상전 벽해중이다.
이곳이 그 옛날 교육받으러 출입하던 정문 입구이다.
입구다.
우리 교실 사용하던 이건물 뒷편은 이미 풀받이다.
입구 진입로다.
입구에서 본 후면 전경이다.
김용기 장로님께서 사시던 건물인데 이제 아파트 공사로 뜯긴다니 애처럽다.
저 빨간 지붕건물이 우리가 공부하던 교실인데 잠도 이곳에서 잦고
교정 마당이다.우리가 아침 일어나면 전체 집합 체조하던 마당이다
이 본관 건물 하나만 존치 시켜 기념관으로 하기로 서울시와 합의 됬다고 하니 그래도 얼마나 안도가 되는지..........
본관건물
본관건물 초입 측면 모습
본관 사무실내의 모습 -김용기 설립자 장로님의 존영과 못도였던 -근로 봉사 희생-
이 운동장을 건너서 앞의 빨간 건물 교육장에 교육받다.
예배당 앞의 작은 예배당.뒤의 증축 예배당-이제 모두 뜯긴데-김용기 장로님께서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와 설교 하시던 교회인데
이 팻말과 이 교회가 영구 보존되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
역사의 한국 근대사의 요람-새마을 운동의 본산인데
가나안 교회
당시의 야외 교육장-김용기 장로님께서 직접 강의하시던 야외 운동장 이제 못보게 되다니
이 야외 교육장 김용기 장로님의 숨소리 그 달변의 지극 정성의 훈육이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인걸도 가고 이제 이 풍산리 농군하교도 가고 역사의 한페이지를 개쳑한 이 곳 -풍산리 농군학교-
본관건물 사무실 옆에 세계 효도 운동본부라고 쓴 사무실 간팡이 아직은 붙여있는데
사무실이다.오늘은 아직 직원들이 근무중이었다.
오전 공부 오후 근로봉사 철저한 농업 실습후 목욕하던 목욕탕이다
본관건물 -살아 보존되는 유일한 건물이다.
그 유명한 김용기 장로님께서 손수 고안하신 1년간도 보존되는 그 유명한 굴 각도 유지형 고구마 저장고이다.
교실 건물
제 4반이란 교실 팻말이 정겹다.
마당이다.
그 유명한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된 농군학교의 생활 규칙이다.당시의 그 가난한 나라에서 이 발심은 곧 겨레의 심금을 울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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