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에 대해 부정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14세기 이후 500년 이상 유지된 왕조는 세계에서 조선이 유일하고 세종 때에는 농지세 개선과 관련, ‘국민투표’ 등 현대 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실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는 2월 교단에 선 지 34년 만에 정년퇴임을 앞둔 허성도(65·중어중문학) 서울대 교수는 6일 “퇴임하는 데 아쉬움은 없고 그 동안 정말 행복했다”며 “또 다른 삶의 새내기가 된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허 교수는 “그 동안 전공 연구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던 세계, 예를 들면 서양철학이나 라틴어 공부 등에 매진하고 싶다”며 “좀더 시간이 허락된다면 전에 관심이 많았던 시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그 동안 대중들에게 중문학 교수보다 인기 역사 강연자로 잘 알려져 왔다. 우리 역사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우리 역사 다시보기’ ‘자랑스러운 한국사’ 등의 강연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허 교수는 고유의 기록문화 유산과 개혁 정책, 앞선 과학기술 등을 재발견해 대중들에게 민족사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허 교수는 수십 년간 국학 기초자료 전산화 작업에 매달려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에 나온 한자 1만5000자를 하나하나 전산 입력하고 1999년 본인의 이름을 숨긴 채 작업 결과를 공개해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국학 전산화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그는 “국학 자료를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에 답답함을 느껴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만 29년 동안 교수로 재직한 그는 “학교 생활을 어려워하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변화를 이끈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추억했다. 허 교수는 1967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1986년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인문대 부학장, 중앙도서관장, 중국어문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