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孙子女

예호가 올린 첫작품입니다. 사진4장

송화강 2013. 9. 28. 18:03

...................사진

 

 

 

2011/5/5청풍명월에서....

 

 

http://blog.daum.net/rosy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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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K그룹 김태연 회장 '할 수 있다'가 성공 비결..

환경오염에 따른 클린룸 시스템, 반도체 적용기술 활용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미국 실리콘벨리의 신화로 알려진 반도체 장비회사 라이트 하우스(LIGHT HOUSE)는

 

 

 미국의 100대 우량기업이다. 여기에 웹사이트 전문회사 모닝 플라넷, 놀스타, 데이터스토어X, 엔젤힐링, 팜 제약 및 의료 등 유망 하이테크 산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이 회사의 최고 경영자인 김태연 회장은 정수원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미국 최초의 여성 그랜드마스터이자 한국문화를 알리는 태권도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사진은 인디언피리로 김태연 회장이 시연하는 모습 ⓒ대한뉴스
1982년 설립된 라이트 하우스(LIGHT HOUSE)는 삼성, 인텔 등 세계적인 반도체기업들에게 클린룸 시스템을 보급하는 하이테크 회사로, IT분야의 공정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 화학적 오염, 온도, 습도 등의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기계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환경오염에 따라 가정에서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클린룸 시스템을 응용한 기기도 선보일 예정이다. 


김태연 회장은 이에 대해 "먼지와 외부에서 날아오는 황사 등의 나쁜 공기는 사람들에게 피부질환 등의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설명하며, 그동안 IT분야에 적용했던 클린룸 시스템을 한국에 보급할 계획이라 밝혔다. 요즘 집먼지 진드기 등에 의한 아토피성 피부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 제품은 병원은 물론 가정에서도 필요한 제품이라 설명했다.


또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와 같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심어주고 싶다며 "한국인과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모국인 한국에서 문화 국민여왕 소리를 듣고 싶다"고 밝혔다. 공병대의 초청으로 방문하여 젊은이들에게 힘과 할수 있다는 용기를 준 것도 이 때문이며, 특히, 요즘 가족간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안타까워했다.


한류에 대한 질문에 "요즘 TV나 인터넷을 보면 아이들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느낀다. 한류라는 유행이 마치 팔이 한쪽만 늘어난 듯한 느낌으로, 이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이 바로 잡아 주어야 할 부분"이라 설명했다. 좋은 문화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며,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이트 하우스(LIGHT HOUSE)

 

김태연 회장은 23살이란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입지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외국에 빨리 나갔기 때문이며, 보통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면 교포사회에 머무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지인들과 친해지고 배우며, 아울러 대한민국의 역사와 우수성을 소개하는 전도사 역할도 필요하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유정호 기자

 

나의 성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열린 인간개발연구원의 강연회에서 행한 김태연 美 TYK그룹 회장의 강연을 간추려 싣는다.

김회장은 2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할 수 있다(Can do)’ 정신으로 오늘날 TYK그룹을 이룬 성공한 재미교포 사업가이다.

 

 KBS 성공시대

 

나 는 2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캐나다 국경 근처 동부 버몬트에 자리를 잡았다.

버몬트는 눈이 많고, 경치도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차갑기만 했다. 68년 당시는 동양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멸시와 인종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Sun is not disappear(태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구름에 가려질 뿐이다.

언젠가 태양은 다시 나와 햇빛이 비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몰라서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쓴 뒤 100여 집을 찾아 다녔다.

 

“내 이름은 김태연입니다. 나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Hi, My name is Kim Tae Yun, I want to be your friend).” 100여 집을 다녔지만 문을 열어준 곳은 몇 집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꿈은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컸다.

 

 

어떻게 하든지 문을 열겠다는 마음이 세포 하나 하나에까지 자리잡고 있었다. 100 집 중 단 3곳에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라고 했을 때 내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100 집 가운데서 3곳이라고 하면 적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떤 집에 들어갔더니 친절한 얼굴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소린지 잘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냥 “Yes(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주인이 커피를 내 주었다.

나는 얼마나 쓰던지 첫 모금을 뱉어내고 말았다. 나는 아직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3년간 태권도 가르쳐

나도 경상도 여자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참 고집쟁이들이 많다. 어린 시절 여자들은 정말 대접받지 못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나였지만 미국에 가면서 마음먹은 것은 빨리 미국인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그곳에 간 첫째 목적은 일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한 달을 계속 찾아갔지만 반응이 없었다.

한 달을 넘기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사전을 찾아 적어 놓았던,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다치는 것이 싫다며 거절을 하였다.

나는 태권도란 그런 것이 아니며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다시 설명하였다.

 

그랬더니 1주일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1주일이 지난 후 다시 찾아갔다. 교장선생은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기회를 줘 보고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 때 다시 생각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월급도 필요 없다고 했다.

 

 돈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이 더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해 말 나는 최고의 선생님으로 선정되었다. 오후 3시에 수업이 끝난 다음 체육관에서 일반인과 선생님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밤에는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그 때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생활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청소 일에 평생 머무를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라는 마음을 깊숙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삶에는 항상 역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3년을 일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좋은 학벌을 가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최고의 학교, 인생의 학교에서 정신의 공부를 하였다.
나는 1946년 정월 초하루 자시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그런 때에 어머니가 배가 아프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손자가 나오니 조상님도 이해를 하실 것이다”며 제사를 미루고 기다리게 하셨다. 대를 이을 손자가 나온다고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핏덩어리에게 고추가 없자 할머니는 “아이구, 김씨 집안도 망했네”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깥에서 할아버지가 “우리 손자 고추가 얼마나 큰가”하고 물어왔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고추가 없다고 하자 다시 찾아보라는 명까지 내렸다고 들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그 즉시 제사상으로 달려가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벌을 주십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이런 출생으로 나는 설날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재수 없는 계집아이의 생일이라는 것이 식구들에게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함께 하는 팀워크 부족

우리 회사에는 공채가 없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빨리 평가한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서류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믿는 것이다. 공채가 없다는 것은 사랑과 인내와 보호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부하 직원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보답을 해 준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에 못 미친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팀워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은행돈을 빌리지 않는다.

나는 사업을 새로 하는 사람에게 3년 동안은 이익을 낼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모두 회사에 재투자하라고 얘기한다.

 나는 몇 개의 회사가 있지만 서로간에 돈을 대주지 않는다.

 

 

내가 맨손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내 자식들에게 그 힘을 물려주고 싶다.

내 손녀는 11살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그냥 주지 않는다. 자립정신,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물려주고 싶다.

아이가 돈을 쓰고 싶다고 하면 왜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주었다.

잔디를 깎고, 접시를 닦으면 용돈을 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손녀의 손을 잡고 은행으로 간다.

그리고 계좌를 만드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을 5∼6살 때부터 가르쳤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그렇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다 해주려 한다.

 


또 기업을 할 때 청소부부터 챙기라고 얘기한다.

미국에서는 훌륭한 사업가들이 가난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인텔의 시작도 차고였다.

나는 가끔 변장을 하고 직접 청소를 한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회사에 대해, 상급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다음으로 오늘을 마지막 생애로 생각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사람들은 오늘을 잊어버리고 100년을 살 것처럼 생각한다.

 

현재가 바로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오늘의 할 일을 진실을 다해 하라고 얘기한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경우도 많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생애가 더욱 멋지게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의 3년 후의 바람을 생각해 보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이렇게 해 보라.

 

샤워실로 들어가 옷을 하나씩 벗을 때 힘든 일들을 하나씩 벗어버린다고 생각하라.

 몸을 씻을 때 어려움도 하나씩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샤워실을 나올 때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두려움이 들었을 때 그것을 이겨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신한다. 

 

젊음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 기울여

- 어떻게 태권도를 시작했으며, 미국에 간 경위는. 한국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6뜥가 끝나고 7살 때 외가집에서 지냈는데 삼촌이 8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새벽마다 고함소리가 들려와서 보니 외삼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삼촌들은 여자아이가 무슨 운동이냐며 거절했지만 결국 내 고집에 꺾여 가르쳐 주었다.

지금 시애틀에 있는 그 삼촌을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 간 이유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고 어머니를 자주 때리셨다.

 

그리고 첩이 5명이나 있었다. 어느 날 남동생이 어머니와 나를 때리는 것을 말리다가 많이 맞았고 자살을 해 버렸다.

 

나는 너무나 상처를 받았고 도망가다시피 떠났다. 내가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마도 굉장히 불행했던지 성공했던지 했을 것이다.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다.


-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을 유지하고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사는 비결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몸을 쓰레기통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 목을 보면 아직 주름이 없다.

손은 젊은 사람 같다.

 

 

그것을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도 잠은 2시간밖에 자지 않고

매일 운동을 한다.

 

 

그리고 기운동과 공부를 한다. 외부적으로 받는 도움은 우리 회사의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때를 벗는 것이다.

- 강연을 듣고 나니 마음이 상쾌해졌다. 김 회장이 느끼는 한국 여자와 남자의 인상은.


한국 여성들은 매우 훌륭하지만 서로 밀고 당겨주는 힘이 부족하다. 서로 힘을 합하면 무궁무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둘째가 한국 남성들 흉내내는 것을 보면 유머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남성들은 권위를 찾는다. 사진을 찍으면 웃다가도 폼을 잡는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분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서로의 가슴속 상처를 품어 안으며 만들어진 가족의 인연

 
엄청난 부와 성공을 거뒀고 후회 없이 모든 일에 도전해왔던 그도 사실 아쉬운 점은 있다.
“어렸을 땐 다들 나보고 못생겼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고 또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봤어요.

연애를 하면 어떨까 궁금하네요. 지금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멋진 남성이 나타난다면 좋겠지만…. 나는 연애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용기 있는 남자가 없네. 하하.”

이민 초기, 주변의 권유에 떠밀려 한 미국 남자와 결혼을 했었다.

하지만 서러웠던 어린 시절만큼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인종 차별과 멸시 또한 매서웠다.

그 시절 그는 두 번이나 유산을 했고 의사로부터 ‘장례 치를 준비를 하라’는 선고를 받을 만큼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다.

결혼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그의 곁에는 소중한 자녀들이 있다. 그에게 태권도를 배우다 양자가 된 6남 3녀.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마약과 폭력, 섹스로 얼룩진 생활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었지만 김태연은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보듬었다. 따뜻한 정과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은 자녀들은 이제 그의 가장 큰 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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