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科学

수의 세계

송화강 2012. 10. 13. 18:53

 

사람은 숫자에 울고 웃으며 '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시간, 날짜, 주민번호, 전화번호, 은행계좌. 급여액수, 번지, 버스노선 등 다양한 수에 묶여서 살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우주란 수(數)를 기본으로 한 '조화로운 전체'이며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말하였다. 현대과학으로 보더라도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에 들어있는 양성자수가 원자번호이다. 수소는 원자번호 1번, 헬륨은 2번, 산소는 8번, 우라늄은 92번 등 원자들이 질서있게 차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유(須臾)’는 ‘아주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유’는 10의 마이너스 15 제곱에 해당한다.

 

 즉, 천조 분의 1로 0을 세다 보면 눈이 아물아물해지는데. 음수로 표기하면 0.000000000000001이 된다.

 

그 유명한 ‘나노(nano)’는 십억 분의 1이며, ‘마이크로(micro)’는 겨우 백만 분의 1일 따름이다. 그러니 ‘수유’는 참 그야말로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눈 깜짝 할 사이’를 뜻하는 ‘찰나(刹那)’는 10의 마이너스 18 제곱이고, 청정(淸淨)은 10의 마이너스 21제곱을 말한다. ‘수유’니 ‘찰나’니 하는 말은 대체로 불가에서 나온 말이다.

 

자리를 나타내는 수사(數詞) ‘십·백·천·만·억·조’ 위에 ‘경(京)·해(垓)·자(秭)·양(穰)·구(溝)·간(澗)·정(正)·재(載)·극(極)’ 등의 수사가 옛 문서에는 기재되어 있고, 불전(佛典)에서는

 

이 위에 ‘항하사(恒河沙)·아승기(阿曾祗)·나유타(那由佗)·불가사의(不可思議)·무량대수(無量大數), 겁(劫)’의 단위를 쓰고 있다.

 

 

 

 ‘금강경’엔 ‘갠지스 강의 모래알갱이 수’라는 항하사(恒河沙) 또는 항사(恒沙)를 비롯해 아승기(阿僧祇)는 10의 56승을 말하며,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 나유다(那由多)·나유타(那由佗) ·나술(那述)은 1,000억을 말하는데, 때로는 10만 따위를 가리킬 때도 있다.

 

무량대수’는 10의 88제곱, 0이 68 개나 붙는 수이고, ‘아미타불 및 그 땅의 수명이 한량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겁(劫)은 연월일이나 어떤 시간의 단위로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하며, 시간을 광겁(曠劫)ㆍ영겁(永劫)이라 하고 조재영겁(兆載永劫)이라고도 한다.

 

 

사실 ‘억’이나 ‘조’는 쓰지만 ‘경(京)’에 이르면 익숙지 않기에 수의 개념이 흐려진다. ‘경’은 10의 16 제곱, 1조의 1만 배다. 1자 다음에 0이 16 개나 붙는다. 경제의 무게가 느껴지는 수치이지만, 금융자산이 별로 없는 서민에겐 꿈에서나 나올 숫자다.

 

 

국내 경제 통계에 경 단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4년이다. 국내 금융회사의 파생상품 거래 규모가 2경원을 돌파한 것이다. 전년도까지만 해도 계약 수로만 통계를 집계하다 금액 단위로 통계를 바꾸자 단위가 갑자기 치솟은 것이다.

 

 그래도 파생상품 거래는 매매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기 때문에 이 금액이 실제로 거대된 것은 아니다. 통계상으로 잡히는 가상의 수치인 셈이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총 금융자산이 2010년 말 현재 1경297조7,000억원에 이르러서 '경 단위 통계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나 광의유동성(L) 등의 지표는 경 단위 바로 직전의 수천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7월 현재 시중에 풀린 광의유동성이 2,887조원인데, 영어로는 2,887trillion으로 표현한다.

 

 

'트릴리언(trillion)'이 조를 뜻하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 단위는 트릴리언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10의 15승을 나타내는 쿼드릴리언(quadrillion)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는 화폐단위가 대개 우리나라의 100분1에서 1,000분의1 수준인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단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쿼드릴리언 단위를 쓰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낯설어 한다"며 "심지어 그들에게 영어사전을 펼쳐 보여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화폐 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뿐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100원을 1원으로, 혹은 1,000원을 1원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환율도 1달러당 1,000원이 넘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화폐 가치가 매우 낮은 것처럼 비춰지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화폐 재발행, 현금인출기ㆍ자판기 교체 등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고,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금까지 수 차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이 좌절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전히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요구가 많지만, 당분간 경 단위 통계를 계속 봐야 할 공산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