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6 불광동 정모
위 사진 左下 ”꽃비“ 모습
2010.11.26 꽃비와 경애이야기
경애는 내 아이들이 어릴 때 집안 일을 거들어 주기 위해 온 아가씨이다.
열아홉 살의 나이로 순박해 보이는 얼굴과 온순한 성품이 마음에 드는 아이였는데
온 첫날부터 나를 따르고 좋아했다.
함께 지낸지 사나흘 쯤 되었을 때, 아무래도 경애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경애와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향에서 공장에 다니던 중에 아내가 있는 어느 남자와 육체의
교섭이 있었고 그로 인해 임신이 되었으며 점점 배가 불러오자 겁이 나서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서울로 왔으며 서울에서는 어느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임신한
사실을 눈치 챈 주인이 내보내는 바람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고 임신 8 개월 째라는 것이다.
불러진 배를 감추기 위해 칭칭 동여매고 있던 헝겊을 풀어놓고 보니 어찌나 배가
많이 부르던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기를 낳지 못할 형편이면 왜 지금까지
이러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병원에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아기를 낳아야 한다면 자기는 차라리 죽고 말 것이며, 병원에서
드는 돈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이라도 일을 해서 갚아 나갈 것이니 제발 아기를 없앨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내가 생각해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형편은 결코
아니다. 아기를 낳아서 다른 곳에 주는 방법도 없지는 않겠으나 죽었으면 죽었지
한사코 아기는 낳지 않겠다고 하니 이만저만 난감한 일이 아니다.
할 수 없이 동네의 잘 아는 산부인과의 여의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더니 이미
임신 8개월 째이니 중절수술은 할 수도 없거니와 한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고
임신부 또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런 아이들은 중절수술을 받게 해주면 열이면 열, 모두 사흘
안으로 도망을 가기 마련이니 절대로 해주어서는 안되며,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바로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도망을 갈 때는 가더라도 저런 아이를 어떻게 그냥
내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두어 곳 다른 산부인과를 가서 상담을 해봐도 답은 마찬가지다. 문득 우리가 가진
작은 건물에 얼마전에 새로 개업한 산부인과가 있다는 생각이 나서 그곳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당시 경애의 5 개월치의 월급이 되는 돈을 요구하면서 중절수술을
해주겠다고 한다.
경애를 수술실로 보내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으니 무섭기도 하거니와 경애가 너무 가엾어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서야 설명을 듣고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임신 8 개월에는 보통의 중절수술과
같은 방법으로는 살인을 저지르는 결과가 되므로 배 속에서 태아를 죽게 한 다음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꺼낸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색이 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더니 내게 들어와 보라고 한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수술실로 들어가니 경애는 하얗게 질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처럼 보이는데 이미 파랗게 변한 태아의 발 하나가 자궁에 걸려 나오지 못하고 있다.
태아가 바로 나오면 그나마 쉬울 것을 공교롭게도 거꾸로 나오는 바람에 임산부가 죽게
생겼다며 아기를 바로 돌릴 수 있는 비싼 주사가 있으니 그 주사를 맞혀야겠다고 동의를
구한다. 비싼 주사 아니라 그보다 더 한 것인들 사람이 죽게 생겼다는데 하지 못하겠는가.
그러고도 1 시간이나 더 지나서야 간호사가 신문지로 둘둘 싼 사산아를 들고 대기실로
나오니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온몸의 맥이 빠진다.
아기를 낳는 것 보다 더 힘이 들었을 경애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부드러운 음식을
준비하며 일주일 동안을 극진히 돌보아 주었다. 병원에서 나온지 열흘 쯤 된 어느 날
짧은 외출에서 돌아오니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경애가 가고 없다.
엄마와 동생들이 너무 보고 싶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집으로 간다. 잘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 아줌마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며 취직을 해서 돈을 벌면 돈은
꼭 갚겠다. 차비가 없어서 아줌마의 지갑에서 3 만원을 꺼내가니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 당시 지갑 속에는 3 만원 외에도 꽤 적지 않은
돈이 있었다. 그리고 화장대 서랍에는 귀중품도 적지아니 있었는데 겨우 차비나 될 정도의
돈을 가져간 경애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예뻤기 때문이다.
그래, 엄마와 동생들이 오죽이나 보고 싶었으면 그런 생각이 났을까. 그 동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가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엄마와 동생들을 만나러 가야지.
그래, 잘했다. 어디를 가서든지 행복하게 살아라고 빌어 주었다.
경애와 함께 지낸 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못하지만 살다가 더러 경애가 생각 날 때가 있다.
그리고 보고 싶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경애도 지금은 어언 오십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으리라. 어디에 있든지 경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꽃비 검색 자작수필방 2010.11.17 오천원으로 산 행복-소띠방-
2013.1.15<사람의 품격>꽃비
일전에 어느 신문의 칼럼난에서 읽은 글에 의하면 현대 미국대통령들에 관한 전기(傳記)
작품으로 풀리쳐상을 받은 열 명의 작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묶어 내놓았는데 이들이
뜻을 합친 것은 대통령 후보를 검증할 때 경제에 밝다느니, 외교에 강하다느니, 법률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다느니, 말을 잘 하느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해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성품을 따지지 않고 겉모습에 홀려 대통령으로 뽑는 것은 대통령의 의자에 시한폭탄을
장치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 아래 열 명의 작가들은 책의 제목을 '성품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Character Above All)'로 결정할 것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 것이었는데
다시 말하자면 성품은 그 어떤 재능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제자 중궁을 가리켜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릴 만한 재목이라고 칭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공자는 임금이 될 만한 중궁의 자질로 아랫사람을 부릴 때는 귀한 손님을
대하듯 하고 자기의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을 오래
가슴에 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과거에 지은 죄는 마음에서 흘려버릴 줄 아는 성품을
들었다.
중궁은 말이 서툴지 않으냐는 다른 제자들의 지적을 공자는 말재간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중궁 다음으로는 자로를 꼽았는데 자로는 좋은 말을 들으면 반드시 실천하고, 남들이 잘못을
지적하면 싫어하지 않고 그 잘못을 반드시 고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건의 품질에도 상하(上下)가 있듯이 사람의 품격에도 상하가 있다. 공자는 생각이 짧아
언행이 경망스럽고 욕심에 따라 사는 사람을 하지하(下之下)라 하고 재물과 지위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을 下라고 했으며 지식과 기술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을 中이라 하고 자신의 분복에
만족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의 품격을 中上이라 했으며 덕(德)과 정(情)을 지니고 지혜롭게
사는 사람의 품격을 上이라 하고 살아 있음을 크게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이 목전에 닥친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그것이 천명이라 여기고 겸허히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상지상(上之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품격의 사람인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꽃비문집:http://cafe.daum.net/080118
수필산문방/아래 창에서 글쓴이 "꽃비"입력
2010.11.26불광동 정모
산동반도.달나라.앵초(樱草)
종달새님(1935년생)과 수수꽃다리님(뜸북새 노래의 이원수님 따님) 그리고 소홍(昭虹)님과함께
산동반도.종달새.수수꽃다리님
http://blog.daum.net/jc21th/17782661
검색어 :수수꽃다리 이원수
Greenhouse 수수꽃다리
http://blog.daum.net/happyday1304/874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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