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乌竹轩

송화강 2011. 8. 2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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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능 오죽현

강릉(江陵) / 오죽헌(烏竹軒)

(보물 제165호)

 
    경포호의 서쪽 들녘 너머로 보이는 죽헌동에 오죽헌이 있다. 뒤뜰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그러나 오죽헌은 그의 친가가 아니라 외가, 곧 신사임당의 친정집 이었다. 본래 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인 최응현의 집으로 그 후손에게 물려져 오다가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사위에게 물려주었다. 그 후 1975년 오죽헌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화될 때까지는 이율곡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 주거 건축으로는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오죽헌은 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에 용꿈을 꾸었다는 데서 이름 붙은 몽룡실이 대표가 되는데, 온돌방과 툇마루로 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순한 일(一)자형 집으로, 본살림채는 아니고 별당 건물이다. 본채는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은 양측면에 합각을 한 팔작 지붕으로 내부는 연등천장이나 합각부분만 우물천장으로 구성했다. 대청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온돌방은 벽과 천장을 모두 종이로 발랐다. 커다란 장대석을 한 층으로 쌓아 기단을 만들고 막돌 초석 위에 사각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는 익공으로 처리하였다. 주심포 양식에서 익공 양식으로 변해가는 주택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로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오죽헌은 외부인에게 개방되어 건물 전면에 문을 열어놓고 『격몽요결』, 「자경문」등의 명문장의 일부를 액자로 만들어 세워 두었다. 오죽헌 옆 문성사 주위에 '오죽'이 자라고 있으며, 율곡 생전에도 있었다는 수령 600년된 배롱나무도 앞뜰에 있다. 문성사는 율곡의 시호 '문성'(文成)에서 따온 것이며, 여기에 모셔진 율곡의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린 것이다. 오죽헌 오른쪽의 작은 중간문을 지나면 안채 건물이 있다. 안채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해 놓은 것이다. 그밖에 정조 임금이 1788년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의 원본과 벼루를 보관하도록 지어준 어제각도 있다. 1975년에 대대적인 오죽헌 정화사업이 있었는데, 이 때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를 비롯해 자경문, 율곡기념관 등이 신축되었다.